자국 방산기업 키우는 폴란드…"더 이상 해외기업들의 돼지 저금통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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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더 이상 해외 방산 기업들의 거대한 돼지 저금통(piggy bank)으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국제 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한 말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유럽 최대 무기 수요국으로 불린다. 2022년 K2 전차를 육군에 도입하는 등 한국 방산 업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자국 방산기업 키우는 폴란드…"더 이상 해외기업들의 돼지 저금통 아냐"

‘국산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폴란드 방위산업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MSPO 현장 곳곳에서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됐다. 무기 구매처인 폴란드 정부 관계자들의 질문 자체가 바뀌었다. 인도 시점과 가격에 치중하던 질문이 이젠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등 국산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옮겨갔다. 한국 방산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총리의 발언은 단순 무기 거래를 넘어 자국 방산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오프셋 계약’(무기 판매국이 구매국에 기술 이전, 현지 생산 등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계약)을 늘리겠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동안 국방력 강화에만 집중하던 폴란드 정부가 방산을 국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정책 방향을 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란드는 동부전선 국방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2024년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4%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 GDP 대비 국방비 지출 1위 국가다. 내년에는 국방비를 550억달러(약 80조7000억원)까지 확대해 GDP의 4.8%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폴란드 정부가 국산화를 강조하면서 현지 기업들도 자국 방산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이번 MSPO에 참가한 폴란드 현지 기업은 426곳이다. 2022년 328곳에서 3년 만에 30% 가까이 급증했다.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부 차관은 MSPO 행사에서 “폴란드 방산 기업의 일감이 넘치게 할 것”이라며 자국 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을 읽고 위성개발 기업 샛레브S.A는 지구관측 위성 분야에서 군사용 정찰 위성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군사용 정찰 위성 발주가 늘 것이란 전망에서다.

MSPO 행사장에선 유독 군복을 입은 바이어들이 눈에 띄었다. 다니엘 비에지크 샛레브S.A 최고경영자(CEO)는 MSPO 부스에서 인터뷰 도중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란드 최대 국영 방산 업체 PGZ의 구매 담당자가 부스를 찾아오자 즉각 응대에 나선 것이다. 현재 샛레브S.A는 폴란드 군비청과 2000만달러(약 300억원) 규모의 군사용 정찰 위성 납품 계약을 논의 중이다. 샛레브S.A가 개발한 위성에는 현지 우주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 텔레픽스가 제작한 위성용 카메라가 들어갔다. PGZ 관계자는 “무기 거래 그 이상을 원한다”며 “폴란드 현지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글로벌 방산 기업이거나 현지 생산, 기술 이전 등의 추가적인 계약 옵션 없이는 무기 계약을 논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키엘체=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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