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 정규 6집 '엑스트라오디너리'…영국 런던 심포니와 협업
"음악은 나에게로 가는 첫걸음…새 앨범 오케스트라 교본 됐으면"
이미지 확대
[찰리 클리프트(Charlie Clif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불안과 우울, 그리고 갈등 속에서 꿋꿋이 서 있는 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진짜 나를 발견하고, 나만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환희를 담아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이 지난달 26일 6집 '엑스트라오디너리'(Extraordinary)로 오랜만에 음악 팬들에게 돌아왔다.
그는 2018년 '사랑이 온다'와 2019년 '청춘' 등 싱글 단위로 신곡을 선보였지만, 정규앨범을 내는 것은 2006년 5집 '올 댓 러브'(All That Love) 이후 19년 만이다.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하면서도 초점이 흔들린 듯한 효과를 낸 앨범 재킷 이미지부터 의미심장하다. 임현정은 재킷 이미지와 수록된 12곡을 통해 불안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열정을 살뜰히 표현해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임현정은 "음악이 아니었으면 '진짜 나'에게로 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음악은 나에게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나에게로 인도해줬다"고 앨범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비롯해 '사랑의 향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등 히트곡을 여럿 냈다. 하지만 삶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니 새 정규앨범을 내기까지 19년이 걸렸다.
임현정은 "삶 자체가 불안과 우울이었다"며 "저는 딸만 셋인 집의 막내로, 반드시 아들로 태어나야 하는 집에서 딸로 태어났다. 제가 아무리 잘해도 부모의 기대에는 근본적으로 부응할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 셈"이라고 돌아봤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취업하는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어느 날 새벽 부모에게 외친 "음악을 해야겠다"는 학창 시절의 선언, 음악을 듣자마자 베이스·기타·드럼 사운드를 곧바로 구별해 내는 섬세함, 여성 솔로 싱어송라이터가 흔치 않던 1990년대 후반 가요계 분위기 등. 이런 모든 상황이 누적되면서 그를 한때 육체적, 정신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임현정은 "공황장애로 세 차례 정도 입원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불안감이 몸의 '경보등'을 24시간 민감하게 작동시킨 것"이라고 떠올렸다.
그러던 중 2015년 말께 주치의가 "다시 음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고심하던 그에게 영국 런던 심포니를 추천했다. 이번 6집이 나오기까지 약 10년에 걸친 '산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미지 확대
(왼쪽부터) 편곡자 맷 던클리(Matt Dunkley), 코디네이터 가레스 그리프트(Gareth Griffiths), 임현정, 프로듀서 제프 포스터(Geoff Foster).
[찰리 클리프트(Charlie Clif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앨범에는 타이틀곡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를 비롯해 '너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굿 타임'(Good Time), '버터플라이'(Butterfly) 등 임현정이 작사·작곡한 12곡이 수록됐다. 75인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풍성하고 따뜻한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지휘자 겸 편곡자 맷 던클리와 세계적인 음악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 제프 포스터가 참여했다.
임현정은 "원래는 작업 요청만 해놓고 직접 갈 생각은 없었는데, 맡겨만 놓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며 "어느 날 밤 남편에게 '런던에 가야겠다'고 말하고서 곧바로 항공권을 예매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음악 작업을 하던 제프 포스터를 예고 없이 찾아가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문을 '확' 열어젖히니 깜짝 놀라더라"고 웃음 지었다.
그는 "영국 스태프가 이렇게까지 직접 작업에 개입하는 여성 뮤지션은 처음이라더라. '여기는 마초 필드'라는 말까지 했다"며 "처음엔 충돌도 많았지만, 나중에는 분위기가 좋게 마무리됐다"고 후일담을 들려줬다.
임현정은 '너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에서 '나는 얼마나 두려웠던 걸까 / 맨발로 길을 걷는 아이처럼'이라고 자신에게 드리웠던 불안을 호소했다. 그러다가도 타이틀곡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에서 '그래 난 나의 길을 가겠어'라고 딛고 일어섰다.
마치 무대가 암전됐다가 찬란한 빛이 쏟아지듯 사운드가 휘몰아치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이 순간의 절망은 환희의 전야제야'라는 곡의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임현정은 "나폴레옹은 황제에 즉위했을 때보다 알프스를 넘었을 때 더 큰 기쁨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처럼 어려움을 딛고 진짜 나를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폭죽이 '펑펑' 터지듯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규정한 나' 혹은 '누군가에게 주입된 나'가 아니라 정말 자유로운 진정한 나를 찾는 게 중요하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 누구보다 존경한다"고 했다.
임현정이 여러 차례 서울과 영국을 오가며 런던 심포니와 완성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이러한 음악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이미지 확대
[찰리 클리프트(Charlie Clif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으로 "미디 같은 가상 악기와 달리 오케스트라는 녹음하는 장소에 따라 입체적인 공간감을 표현할 수 있다"며 "오케스트라는 옆으로 퍼지는 소리, 앞으로 쭉 뻗는 소리 등 악기에 따른 다양한 질감을 아름답게 빚어낸다. 이번 앨범을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교본'으로 만들어서 후배 가수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6년 KBS 2TV 드라마 '컬러' OST '아무일 없던 것처럼'을 작사, 작곡하며 가요계에 등장한 임현정은 올해 햇수로 데뷔 30년째를 맞았다. 그는 꾸준히 보컬 레슨을 받으며 더 나은 음악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임현정은 "추후 코러스를 보강해 런던에서 수록곡 '너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의 가스펠 버전도 녹음하려 한다"며 "이후 이번 앨범의 CD와 LP 버전도 발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ts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05일 08시0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