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국제관계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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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1938년 9월 30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4개국 정상이 뮌헨에 모였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합병에 이어 독일인 거주자가 많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의 할양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원치 않았던 유럽 강대국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해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평화를 구걸한 협정이었다. 당사자인 체코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 히틀러는 이듬해 3월 체코의 나머지 영토를 병합했고, 9월엔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미지 확대 설전 벌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설전 벌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폴란드는 18세기 후반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3차례(1772·1793·1795)에 걸쳐 분할되면서 모두 123년간 지도에서 사라지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1차 세계대전 뒤 가까스로 독립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맺은 뒤 순차적으로 침공해 또 다시 분할 점령됐다. 소련은 비밀경찰(NKVD)을 동원해 폴란드 장교·경찰·교사 등 지식인 포로 2만여 명을 총살한 뒤 집단 매장하는 이른바 '카틴 숲 학살'을 자행했다. 폴란드는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됐으나, 이후 냉전 시기 내내 소련의 위성국가로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역사는 약육강식으로 점철돼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미국과 러시아 간 협상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면서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반면에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이 과정에서 패싱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과 실지(失地) 회복은 난망(難望)한 상황이다. 트럼프는 전쟁 지원 대가로 광물자원 수익의 50%와 신규 자원 개발권의 우선매수청구권까지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파국을 맞으면서 우크라이나의 처지는 더욱 곤혹스럽게 됐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독선적 종전 협상은 유럽에서 예기치 못할 나비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맏형' 역할을 자임해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유럽 주도의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발을 뺄 테니 안보는 스스로 지키라는 으름장이다. 경악한 유럽 지도자들은 '자강론'을 내세우며 방위비 증액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함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계획안과 평화유지군 파병도 협의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을 배제한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미국의 또 다른 안보축인 동북아 지역에서도 전략적 입장 변화가 나타날 것이냐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일본과 일대일 군사동맹을 맺어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한미일 3각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공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미일 3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속셈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아시아 우방국들도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04일 07시42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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