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전작권 제때 제대로 가져올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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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두 최종 결정” 트럼프 ‘멋대로 관세’
무역-안보 패키지딜은 그 ‘변덕’ 넘을 고육책
美도 준다는 전작권, 협상카드 될 순 없지만
국방비 증액 통한 자강력 확보 계기로 삼아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각국에 상호관세율을 일방적으로 매겨 발표한 이래 석 달 넘도록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한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 두 나라뿐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달 초 ‘위대한 합의’라며 공개한 베트남과의 합의를 두고선 의문이 커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합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언제 시행될지, 시행은 되는 건지조차 불확실하다.

베트남 협상단은 미국과 11% 관세에 합의했다고 여겼지만 트럼프가 막판에 끼어들어 또럼 공산당 서기장과 통화한 뒤 두 배 가까운 20% 관세를 발표했다고 한다. 막판 뒤통수를 맞은 베트남 측은 실망과 분노에 빠졌고, 백악관 측은 “협상팀이 조율했어도 마지막 승인은 ‘정상 대 정상’의 일”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만이 유일한 최종 결정자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지난주 또다시 각국에 ‘관세서한’을 보내 관세율을 일방 통보했다. 어떤 협상 결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멋대로 뒤집기가 예사고, 개인적 친소관계마저 주요 기준이 된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던 브라질 전직 대통령이 쿠데타 음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마녀사냥”이라며 브라질 정부에 50%의 관세를 통보한 것처럼 트럼프 관세는 이제 타국의 국내 정치와 형사재판에까지 개입하는 만능 무기가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정부로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 형국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최근 워싱턴을 다녀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동맹의 엔드 스테이트(end state·최종 상태)까지 시야에 넣은 협상”, 즉 통상·투자·구매·안보를 망라한 패키지 협의를 언급하면서 한미 정상회담 조기 추진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첫 만남은 단순 외교 이벤트를 넘어 실질적인 담판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와의 회담은 각국 정상에겐 흥망이 걸린 도박판이 됐다. 우방 정상을 불러놓고 모욕과 좌절을 안긴 트럼프는 이제 백악관 집무실을 각국 정상들이 늘어놓는 칭찬과 간청의 경연장으로 만들었다. 그런 위험한 무대에 이 대통령이 올라야 한다. 더욱이 무역-안보 패키지 협상은 이미 트럼프가 “정말 아름답고 효율적 방식”이라던 ‘원 스톱 쇼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그간 무역-안보 분리 기조에서 ‘패키지 딜’을 통한 연계 전략으로 전환한 것은 불가피한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통상과 투자에서 미국의 요구를 맞춰주기 어려운 터에 트럼프의 또 다른 관심사인 방위비 등 안보 사안에선 우리도 나름의 카드가 있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특히 트럼프 2기 국가방위전략(NDS) 보고서가 늦여름에 나올 것으로 예고된 만큼 우리에게 닥칠 각종 안보 과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시급한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가 지난 20년간 이어진 논란과 갈등의 연장선에서 다시 정치권 논쟁의 대상이 됐다.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추진을 공식화한 이래 그 시기·조건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도 합의와 번복이 거듭된 민감한 사안이다. 그래선지 이 대통령도 대선 공약집에 ‘한미동맹 기반 위에 전작권 환수 추진’이라고만 밝혔다. ‘전환’이 아닌 ‘환수’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그 시기나 완급, 조건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설명대로 전작권 전환은 한미 간 장기 현안으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1기 때도 양국 합의에 따라 추진했던 사안이다. 더욱이 미국이 안 내주려 한다면 모르지만 트럼프 행정부도 마다하지 않는 터에 우리의 협상 카드가 되기 어렵다. 우리가 말을 꺼내는 순간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주한미군 역할 조정 같은 요구를 쏟아낼 수도 있다.

다만 전작권 전환은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호응하면서 우리의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설득 카드로 삼을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핵심 조건은 연합작전 주도 능력과 북핵 위협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그를 위한 지휘통제와 감시정찰, 미사일방어 능력을 구비하는 데는 막대한 국방 예산이 소요된다. 숫자와 실적을 중시하는 트럼프에게 우리의 국방력 확충, 나아가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은 무시할 수 없는 가산점이 될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프의 난폭함은 전 세계에 걸친 과잉 팽창이 미국의 쇠퇴를 불렀다는 비관주의에 기인한다. 트럼프 이후에도 이런 미국 군사력의 글로벌 수축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미 세계 5위의 재래식 군사력을 자랑한다지만 세계적인 군비 증강 흐름에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긴 호흡 속에서 동맹과 자강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며 한미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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