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꿈쩍도 않는 국힘 ‘쩍벌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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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혁신위 출범하자마자 좌초
제 자리만 챙기는 친윤 기득권 탓 아닌가
당 혁신 막고 與 독주 못 막는 민폐 세력
부끄러움 알면 자리 양보하고 물러나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닷새 만에 사퇴하고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2인’의 탈당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너무 빠른 철수의 속내가 의심스럽지만 인적 쇄신 요구는 정당했다고 본다. 안 의원은 혁신을 거부하는 당내 기득권 세력을 ‘수술 거부하는 중환자’에 비유했는데 필자는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민폐를 끼치는 ‘쩍벌남’이 떠오른다.

쩍벌남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당 개혁안을 놓고 친윤과 비윤이 격돌했던 지난달 9일 국힘 의원총회 사진을 찾아보라. 회의장 앞줄에 김용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가 서로를 외면한 채 앉아 있는데, 김 위원장이 양손과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모습과 대조적으로 권 원내대표는 다리를 쩍 벌리고 있다. 당 관계자는 최근 라디오 시사프로에 나와 당내 주류들이 의총장 앞줄을 선호하는 이유는 쩍벌하기 좋아서라고 했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비윤과 무시하는 친윤의 차이를 이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부터 유명한 쩍벌남이다. 대선 주자 시절 온라인에서는 ‘아랫도리만 보고 누군지 맞히기’ 게임까지 벌어졌다. “쩍벌남은 100% 안 좋은 이미지”라는 전문가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후로도 고쳐 앉지 않았다. “쩍벌과 쇄신이 무슨 상관이냐” “과도한 일반화다” 반박해도 소용없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쩍벌은 내가 편하면 됐지 남을 배려할 필요가 있느냐는 오만한 멘털리티의 문제다. 사람들이 계엄으로 피해를 입든 말든, 계엄 정당으로 낙인찍든 말든 내 지역구만 지키면 그만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남자든 여자든 쩍벌남이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후로도 쩍벌남들은 꿈쩍도 않는다. 쩍벌남이 앉았던 원내대표 자리에 또 다른 쩍벌남이 앉았고 당 3역도, 비상대책위 지도부의 다수도 윤을 옹호했던 ‘방탄의원단’ 혹은 ‘탄반모’ 지지 인사들이다. 다리 좀 모아 달라 지적하면 되레 성을 내는 게 쩍벌남의 특징이다. 인적 쇄신을 요구한 안 의원에게 “비열한 행태” “혁신의 대상”이라고 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도 5대 개혁안을 꺼냈다가 “사퇴하라”는 소릴 들었다. 혁신하지 않으면 절멸할 위기인데 이런 해당 행위도 없다.

쩍벌남들이 나라에 끼치는 민폐는 더 걱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 중엔 투기, 논문 표절, 이해충돌 의혹을 받는 이가 수두룩하지만 여당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전원 통과’를 자신한다. “대통령이 전과 4범이라 인사 기준 무뎌졌나” 따지면 “법정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밖에 없는 내란죄 피의자 싸고돌던 당이 할 소린가”라고 되치기당한다. 전한길 강사에게 “계몽령 가르쳐줘 감사하다”던 의원의 ‘배추 총리’ 임명 철회 농성은 촌극 같았다.

여당은 기업에 무거운 족쇄를 채우는 상법 개정을 시작으로 경제 사회 방송 각 분야에 악영향을 줄 입법 독주에 시동을 걸었다. 76년간 존속해 온 검찰청을 추석 전에 해체한다 하고, 이 대통령과 측근들이 기소된 사건을 ‘조작 기소’라며 이에 대응하는 특별팀도 꾸렸다. 쓴소리꾼이라는 법무장관 후보자까지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같이 함부로 거론할 사안들이 아님에도 거침이 없다. 제1야당은 내란당으로 권위를 잃었고, 3개 특검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35개 혐의를 탈탈 털고 있다. 김 여사, 샤넬백, 주가조작, 통일교, 북풍 공작 의혹에 건진법사까지 넷플릭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수사 내용이 줄줄이 공개돼 눈과 귀를 잡을 텐데 누가 재미없는 방송3법 검찰4법에 관심을 가지겠나.

보수의 뿌리와 기둥으로 이승만 박정희를 꼽지만 구한말 문명 개화와 부국 강병을 도모하고, 해방 공간에 농지개혁이란 진보적 과제를 수행하고 극단을 배격하며 다원적 정치 체제를 구축한 막후 주역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상층 지주 보수 세력이었다(이승렬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희생과 책임의 신사들이 뿌리내린 보수의 나무에서 계엄을 두둔하고 부정선거에 현혹되는 극단주의의 가지가 뻗어 나왔으니 ‘보수의 심장’에서도 “느그가 보수가”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국힘이 자력으로 혁신할 기회는 다음 달 전당대회만 남은 듯하다.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는 후보들은 “이재명과 싸우겠다” “야성(野性)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야성보다 염치가 필요하고 이재명이 아니라 당내 쩍벌남들과 싸우는 게 먼저다. 민폐를 끼친 데 대한 사과와 자리 양보는커녕 바로 앉을 생각도 않는 사람들은 일으켜 세우고, 생각과 몸가짐이 반듯한 호감형 인물들을 앉혀야 한다. 이제 쩍벌남은 지하철에서도 보기 어렵다. 우리 민도(民度)가 쩍벌남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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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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