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폭염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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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올여름 때 이른 폭염으로 아침 출근길에도 '날씨가 덥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 시작한 지도 며칠 됐다. 그나마 냉방이 잘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쾌적한 온도로 맞춰진 환경에서 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날 종일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더위를 불평하는 자체가 민망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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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도 체감온도 경보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8일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2025.7.8 cityboy@yna.co.kr

뙤약볕에 일할 수밖에 없고, 퇴근 후에도 냉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폭염은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피해까지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 않다는 점을 일깨우는 사고들이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7일 오후엔 경북 구미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폭염 속에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쓰려져 숨졌다. 베트남 국적의 이 20대 일용직 노동자는 앉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고 당시 체온이 40.2도였던 점으로 미뤄 온열 질환이 사망원인으로 추정됐다. 이날 구미 지역은 낮 최고 기온이 37.2도였고 폭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이 베트남 청년은 이날이 첫 출근일이었다고 한다.

좀 오래된 연구(2017년)이긴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온열질환 발병률이 내국인의 4배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2015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 1만명 중 12명꼴로 온열질환이 발병한다면 한국인은 1만명에 3명꼴로 같은 질환에 걸렸다는 것이다. 한국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공사장이나 논밭 등 야외 작업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데다 폭염에 대한 정보 접근성도 떨어져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처럼 폭염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 어디서 일하고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영향의 크기가 좌우된다. 야외 노동자나 건설 현장 노동자, 농촌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폭염은 분명 사무실 노동자들과는 다르다. 지하나 반지하 주택, 비닐하우스, 쪽방촌 등 열약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는 경우 폭염에 더 크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올해 들어 폭염의 맹위가 무섭다. 8일 서울 최고 기온이 37.1도로 기상 관측 이래 7월 상순 기온으로는 최고치였다고 한다. 전국의 누적 온열질환자는 모두 977명(이달 7일 기준), 그중 사망자는 7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온열질환자는 2배로 증가했고, 지난해 3명이었던 사망자도 2배 이상 많다. 스스로 폭염을 감당하기 힘든 취약계층이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폭염은 복합적인 기후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근본 요인 중 하나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꼽힌다. 이런 측면에서도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에너지도 덜 쓰고 환경 쓰레기도 덜 배출하는 등 사회적 재화 소비가 적다고 봐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그만큼 적게 한다는 의미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적게 미치면서도 그 피해는 온전히 더 받게 되는 계층을 방치한다면 그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전문가들은 기후가 빈곤과 결합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한때 더위와 추위는 가난한 자만이 겪는 불편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불편을 넘어 불평등이 됐다. 폭염은 단순히 기후 현상이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배려와 지원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09일 06시0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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