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은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기념일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된 날이기도 하다. 전자는 오염되고 후자는 잊힌 지경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6·25전쟁 휴전협정을 맺은 뒤 대선 공약대로 한반도에서 철수하려 했다. 미 사회 전반에는 소련에 동조하는 지식인 등이 많았고, 미 국무부 안에는 후일 소련 간첩으로 밝혀질 자들까지 여럿 있었다.
그런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는, 세계 최빈국의 ‘그 시절 여든 살’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그가 펼친 국제정치학적 방법론들과 ‘미치광이 전술’ 등을 되짚어보면,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공상과학작가 아서 C. 클라크의 말이 연상된다. 그만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에는 황당하고 한국에는 불가능한 일로서 시작됐다.
이 기적의 숨은 천사는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월터 로버트슨이었다. 그는 1953년 8월 초 한국에 입국, 불과 두 달 동안 이승만과 무려 12차례의 혹독한 담판을 인내하며 미국과 한국 사이를 중재했다. 그 생고생 끝에서 그는 이승만의 초인적인 애국심을 존경하게 됐고, 대한민국은 이 미국인에게 누대(屢代)의 빚을 진다. 이승만은 조약 발효를 13개월이나 늦추며 한국군 증강과 대규모 경제원조 확보 등을 그야말로 ‘끝까지 뜯어냈다’. 그가 특히 집중한 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지면 미군이 자동 개입하는 장치를 마련해 북한과 중공, 소련의 침략을 예방하는 거였다. 조약 자체에서는 미흡한 이것은 미군 주둔으로 보완됐다.
이승만은 휴전협정, 정전협정 따위가 ‘말장난’임을 알았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전쟁을 막는 실제적 힘이 되리란 걸 믿었다.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는 계획까지 검토할 정도로 그에게 질려버렸다. 당시 소련은 공산당 관영지 ‘프라우다(Pravda)’의 사설 등에서 “유엔군 사령관이나 미국 대통령도, 의회도, 그 노망 든 늙은이에게 지고 있다. 이런 꼴불견이 또 어디 있겠는가”라며 미치겠는 심정을 비난으로 표현했다. 그건 중공도 마찬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이승만을 저주, 격하하는 건 북한이며 그런 저들 증오의 중심에는 항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어 왔다.
동맹이란 친구가 같은 게 아니라 적이 같은 사이며, 적이 화를 내고 있다면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1991년 필리핀 국회는 20세기 내내 필리핀에 주둔해온 미군을 철수시켰다. 그러자 중국이 필리핀 바다로 치고 들어왔다. 이에 필리핀은 UNCLOS(유엔해양법협약) 중재재판소에 중국을 제소해 상당 부분 승소했으나 즉각 중국은 이를 거부하며 되려 군사적 위협을 강화시켰다.
이게 국제적 현실이다. 우리 시대에 어느 세력이 매국인지는 선명하다. 저들이 주장하는 전시작전권 회수는, 알았든 몰랐든, 주한미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붕괴시키는 과정일 뿐, 현 전작권의 입체적 참의미와는 ‘사실이 다르다’. 전 세계에 안보를 홀로 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연맹한다. 미국조차도 그렇다. 현재 대략 49개국 120여 개 기지의 미군이 각국의 요청과 이익 협의에 따라 주둔하고 있다. 자주국방은 도그마가 아니라 ‘자주국방력’을 갖추려는 당연한 추구사항이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운명’상 최선의 동맹을 ‘선택해야만’ 한다. 균형자나 조종자 자처는 환상이자 자폭이다.
조선이 망한 건 자주국방력과 외교(‘선택’)가 둘 다 잘못된 탓이고, 만약 자주국방력이 있었던들, 지금 같은 ‘세계 격변기’에,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망했을 것이다. 이승만은 말했다. “우리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번영할 것입니다.” 제6조에 의해 이 조약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싫어진 쪽이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파기된다. 후손들의 미래를 좌우할 이 사안을 한 정권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끔찍하다. 그래도 된다는 한국인들이 적잖다. 미국이 싫다면서 제 자식은 기를 쓰고 미국에서 살게 하는 사람들은, 한미상호방위 시스템이 사라진 뒤 닥쳐온 ‘온갖’ 환란들 속에서, “아아.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데”라고 탄식할지 모른다. 천만에. 알았든 몰랐든, 당신이 ‘저지른 짓’이 맞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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