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5〉군기 빠진 대한민국, 교육개혁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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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우리 애 잘 때 에어팟 끼고 자게 해달라.” “알레르기가 있으니 다른 음식을 준비해 달라.” 이런 요구가 오가는 곳이 어딜까. 놀랍게도 군대다. 지휘관들은 훈련보다 민원 대응에 시달리고, 간부들은 스스로를 '극한직업'이라 자조한다. 부모가 자식의 복무 환경까지 관리하려 드는 사회,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4년 교권 침해는 504건, 그 중 학부모 민원이 208건이었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잇따르고, 취업 면접장에 어머니와 동행한 청년, 회사 인사팀에 자녀 배치를 요구하는 부모의 전화가 일상이 됐다. 대한민국은 '내 자식만 소중한 나라'가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근본 원인은 교육 시스템의 붕괴에 있다. 가정에서 인성을, 학교에서 학업을 가르치던 두 축이 모두 무너졌다.

가정 교육의 붕괴를 흔히 핵가족 탓으로 돌리지만,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진짜 문제는 공동체의 역할이 사라진 데 있다. 과거에는 조부모와 이웃의 돌봄 속에 아이들은 타인을 존중하고 함께 사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극단적 자녀 중심주의가 공동체의 자리를 대신했고, 그 빈틈을 무한경쟁과 이기주의가 파고들었다. 결국 타인을 배려하거나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우지 못한 세대가 자라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고등교육의 연쇄 붕괴다. 2012년 시작된 등록금 동결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었다. 당장의 표심은 얻었지만, 대학 재정 보전 대책 없이 13년간 방치한 결과 파탄에 이르렀다. 2025년 131개교(69%)가 생존을 위해 등록금 인상을 강행했지만, 누적된 재정난을 해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의 과도한 규제는 대학의 숨통을 더욱 조였다. 입시제도, 학사운영, 등록금까지 통제하자 대학은 '하청기관'으로 전락했다. 창의적 교육과정은 사라지고, 행정은 눈치 보기로 채워졌다. 그 결과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2011년 39위에서 2024년 49위로 추락했고, 우수한 교수와 학생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독일의 '키타(Kita)'는 지역주민, 부모, 교사가 함께 운영위원회를 꾸려 마을 전체가 아이의 성장을 책임진다. 이웃 어른이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부모는 이를 공동체의 돌봄으로 받아들인다. 핀란드는 학교를 지역의 중심 공간으로 삼아 주민이 함께 이용하고 운영한다. 우리도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읍면동 단위의 지역아동센터와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 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주민이 참여하는 돌봄·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예비부모와 학부모에게는 시민교육과 공동체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가정과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생태계를 되살릴 때, 교육의 근본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대학은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핀란드가 1990년대 교육부 권한을 대학에 이양해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듯, 교육부는 감독과 지원 역할로 돌아가고 교육과정과 입시 결정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대학 자율화가 이뤄지면 초중고 교육도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각 대학이 특성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면 획일적 입시가 무너지고, 지방대학도 특성화로 살아나며 사교육 광풍도 잦아들 것이다. 대학이 다양해지면 공교육이 바로 서고 다양한 인재가 꽃핀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정치권은 포퓰리즘을 버리고, 교육부는 규제를 내려놓으며, 학부모는 극단적 자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시작하면 10년 뒤, 공동체를 아는 시민과 창의적 인재가 이끄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다. 교육개혁이야말로 넥스트 거버넌스를 여는 출발점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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