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가장 먼저 뛰어든 국가다. 지난 2월 7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차례나 관세 협상을 벌였다. 트럼프 정부 1기 때와 같은 밀월을 기대한 일본 정부는 자동차 관세 제외에 사활을 걸었다. 미국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2023년 기준 7833억달러),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3월 기준 1조1308억달러)의 입지는 협상에 자신감을 더했다. 6개월간의 탄핵 정국으로 손발이 묶인 한국은 미·일 간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일본의 전략은 2기 트럼프 정부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특별 대우는 없었고 되레 ‘버릇없는(spoiled) 국가’ 취급만 받았다. 지난 8일 트럼프가 보낸 ‘25% 상호관세 레터’는 일본 정치권과 경제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당초 4월에 예고한 24%에 1%포인트를 더한 이유를 워싱턴은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에 좀처럼 반기를 들지 않던 일본 정부와 언론이 “동맹을 경시하는 난폭한 방식” “안일한 타협은 안 하겠다”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이다.
“트럼프는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협상하기 쉬운 파트너일 것으로 봤고, 일본 역시 2019년 자동차 관세 면제 때처럼 쉽게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미국 측 대표를 맡은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부회장의 분석이다. 트럼프는 협상 초기 일본과의 성적표를 고리로 삼아 한국 호주 등 핵심 우방국과의 관세 협상을 풀어내겠다는 심산이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 당시의 성공 신화에 매몰돼 이번에도 자동차 관세 면제를 기대했다.
그러나 협상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트럼프 1기 때는 정상회담과 전화 통화 등 30회 이상의 접촉과 골프장 벙커 바닥을 굴러가면서 환심을 사려고 한 아베 총리의 절박함이 상황을 풀어갔다. 아베는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트럼프를 비판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이시바 총리는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에서 “국익을 건 싸움이다. 깔보는데 참을 수 있냐”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 와중이라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다테마에’의 나라 일본 정가에서 보기 힘든 직설적 표현이다.
24%의 상호관세를 트럼프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25%로 올린 배경에는 일본의 이 같은 태도를 겨냥한 ‘괘씸세’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일본의 전면적 관세 면제 전략은 트럼프 1기 성공 신화에 대한 과신이자 오판이었던 셈이다. 관세 폭탄을 국내 정치의 국면 전환용으로 삼아 반전을 끌어낸 캐나다, 브라질 등과 달리 이시바 정권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악재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2기의 가장 큰 특징은 ‘동맹도 거래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을 노골화한 점이다. 그의 거래 중심 세계관에서 동맹은 더 이상 면책 대상이 아니라 가격을 흥정하는 상대일 뿐이다. 안보와 통상을 분리한 전통적 외교 접근법은 설 자리를 잃었다. 관세 폭탄에 방위비 분담금 9배 인상, 주한미군 감축 위협 등 안보와 통상, 관세를 뒤섞은 ‘토털 패키지’ 공세에 직면한 한국에 일본의 상황은 결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일본은 미국 채권 1위 보유국과 FDI 1위 지위를 지렛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동차 한 품목 방어에 함몰된 전략으로 낭패를 봤다. 한국은 이를 교훈 삼아 안보·경제·비관세를 연계한 다층적 협상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거래 대상이 되지 않는 동맹’의 공간을 찾아내는 게 협상단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