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몸을 위해

1 month ago 7

[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몸을 위해

요즘 수영 강습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가지 못했다. 어제 밤새 아들이 토했다. 구토가 멈추지 않아 지켜보는 마음이 닳았다. 마음이 한없이 벽에 쓸리는 기분을 느끼다 보면 마음이 닳는다는 표현이 얼마나 핍진한 표현인지 알겠다.

“왜 자꾸 토하지?”

“엄마 병원 가고 싶어요.”

아들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토했다. 입술이 거칠어지고 얼굴에 혈색 없이 온몸이 축 늘어졌다. 노심초사하며 응급실 앞에 도착했는데 아이의 나이를 묻는다.

“중학생이에요.”

“법정 나이 17세 이하는 소아로 분류되어서 응급진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네?”

“의료파업으로 소아 응급 인력이 없습니다.”

의료파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았지만, 실감하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다. 아이가 아프니 모든 게 원망스러워진다. 그런데 누구에게? 의사들을 탓했다가 대통령을 탓했다가 국회의원들을 탓했다가 결국 아픈 아이를 탓하고 나를 탓한다.

“그럼, 소아 환자들은 어떡해요?” 묻는데 눈물이 나려 한다.

“119에 전화해 보세요.”

병원 응급실 접수대 앞에 겨우 서 있던 아이가 다시 구토하기 시작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 119가 연결해 준 곳에서 휴대전화로 보내준 문자에는 소아 응급 진료 여부가 표기된 병원의 목록과 전화번호가 가득하다.

“엄마 서 있을 힘도 없어요. 눕고 싶어요.”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보다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는 남편도 토하기 시작했다. 밀린 마감을 하느라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나 빼고, 외식한 두 사람이 아프다. 비행기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서로 다른 메뉴의 기내식을 먹는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먹고 동시에 식중독에 걸리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내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밤새도록 토하는 아이와 남편 옆에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이온음료를 몇 통째 사 먹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서 생각했다. ‘마치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이 된 것 같아….’

봄으로 접어드는 절기지만 한파 특보가 내렸다.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집 앞 병원을 찾았다. 링거를 맞고 돌아와 종일 잠만 자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보니, ‘봄’이란 글자가 ‘몸’으로 보인다. 몸을 쓰는 일, 몸을 가꾸는 일, 몸을 통해 세상을 읽는 일이 무엇보다 귀하구나 싶다. 병원을 다녀와 한결 나아진 남편과 아들 덕분에 나도 기어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렸지만, 몸을 움직이니까 활력이 생긴다. 뭐든 과하지 않게 관계 맺어야 몸도 건강한 듯하다. 음식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들의 관계까지. 관계란 말에 민감해진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아름다워질까.

남쪽은 뿌리를 들어 올리는 쑥과 냉이와 미나리가 제철이란다. 서울의 이월은 아직 춥다. 그래도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봄엔 몸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존재하는 동식물은 몸을 쓰고 있다. 이 봄도 지금 봄이란 몸을 갖기 위해 몸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주말엔 구례에 간다. 거기서 먼저 나온 봄의 눈동자를 바라봐야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란 시에서 ‘별’을 ‘새싹’으로 바꿔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저렇게 많은 새싹 중에서 새싹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는 그 새싹 하나를 바라본다.” 지구에 온 봄이 어떻게 오는지 많이 바라보는 입춘이 되길. 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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