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제 허신 그 말씀이 재담이요 농담이요 실담이요 패담이요? 사람 죽는 구경을 도련님이 허시랴요? (중략) 산해로 맹서허고 일월로 증인을 삼어,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사지 마쟀더니(또는 마자더니) 한 돌이 다 못 되어 이별 말이 웬 말이요?"
춘향이 마음이 전해지나요? 이 도령이 갑자기 떠난다네요. 남원 사또인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 났으니 꼼짝없이 같이 가야 하고 말고요. 느닷없이 닥친 이별이 춘향이는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꺼이꺼이,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춘향이의 절절한 말을 세세히 뜯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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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재치로 하는 말(재담) 농으로 하는 말(농담) 실없이 하는 말(또는 실수로 하는 말. 실담)은 넘겨짚을 만합니다. 그런데 패담은 단서가 없습니다.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어지러울 패(悖)와 말씀 담(談)을 쓴 말입니다. [사리에 어긋나게 말함. 또는 그런 말]이라고 합니다. 춘향이가 점잖은 명사를 썼습니다. 가만 보니, 이거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 즉 개소리와 비슷합니다. 쉬운 개소리 놔두고 어려운 패담을 썼습니다. 이 도령의 이별 통보에 대한 적절한 어휘 선택으로 이해합니다.
춘향이의 구슬픈 말을 더 살펴봅니다. 산과 바다에 맹세하고 해와 달을 증인으로 하여 뽕나무밭이 파란 바다가 되고 파란 바다가 뽕나무밭이 되도록 이별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하고 탄식합니다. 춘향이는 이 도령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판소리를 쉽게 설명한 한 책은 "요즘 사람들은 그냥 '사랑해'라는 말만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면서 "우리 조상들은 온 천지 사방팔방에 다 맹세할 정도로 사랑 표현도 다양했다"고 이 대목에 대한 감상을 전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견해로 읽힐 뿐입니다. 생각이 다들 다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다른 하나의 느낌은 있습니다. 요즘 너무 많은 패담, 아니 개소리를 쉼 없이 옮기는 따옴표 뉴스가 넘친다는 사실, 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이경재 글 윤정주 그림, 『판소리와 놀자!』, ㈜창비, 2007
2. 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가사자료 중 [판소리가사] 춘향가 이야기 - http://koreapansori.com/information/lyrics.php?ptype=view&idx=5694&page=1&code=lyrics&category=113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04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