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제헌헌법 이야기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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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가 제헌헌법(최초 헌법)을 기초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48년 6, 7월 격동의 제헌국회 현장으로 갑니다. 유진오는 헌법안이 자칫 대통령 독재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우려합니다. 이승만의 '벼랑끝 전술'로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헌법안이 급변한 상황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진오는 내각제 요소를 곁들여 대통령제 위험을 완충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 국회 승인을 받게 하고 총리 추천을 받아 다른 국무위원을 임명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 가운데 총리 임명의 국회 승인만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제헌헌법 제69조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각제 요소의 다른 요체는 국무원 제도입니다. '국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기타의 국무위원으로 조직되는 합의체로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한다'(제68조)와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는 문서로 하여야 하며 모든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66조)입니다.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정부위원은 국회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으며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답변하여야 한다'는 44조 역시 내각제 속성입니다. 이들 조항이 제대로만 실행된다면 두 제도의 혼성 화음이 훌륭할 것 같습니다. 정치 현실로 미뤄볼 때 이상론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이미지 확대 1987년 제9차 개헌 헌법개정공포 문서(복제본)

1987년 제9차 개헌 헌법개정공포 문서(복제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촬영 이충원]

과거사를 돌아봅니다. 제헌헌법과 이후 개정헌법 아래 대통령들은 독재를 일삼거나 대독(代讀) 총리를 양산했습니다. 총리 임명은 사후 승인이 아니라 사전 동의로 강화됐지만 총리서리로 우회했지요. 심지어 사전 동의는 박정희 유신헌법에 담긴 겁니다. 이것이 대통령 견제에 별 쓸모가 없었음을 방증합니다. 총리 추천을 통한 국무위원 임명은 허울뿐인 경우가 많았고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을 '보필'하기보다 '섬기기'만 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이 잘못하는데도 외려 국회의원들에게 큰소리치며 대통령을 감싸기 급급했습니다.

개헌론이 연기를 피웁니다. 1987년 헌정체제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피땀 눈물로 쟁취한 것이지만 불완전한 타협의 산물임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웅변하기도 합니다. [헌법을 개선하자]라는 구호는 그래서 당연하게도 비칩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 나으니까 언제, 어떻게 고치자]라는 실천 영역으로 들어서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의도가 다른 곳에 있음이 보이는 개헌 주장이 섞인 것도 사태를 복잡하게 합니다.

이미지 확대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복제본)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복제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촬영 이충원]

여기서 기억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독재자가 장기 집권하려고 한 개헌 빼고 역대 개헌 모두는 민심에 터 잡은 것이었다는 점 말입니다. 달리 기억할 것도 하나 있습니다. 제헌헌법 완성은 헌법기초위원 30인이 뽑혀(6월2일) 16차례 회의를 하고 국회 본회의에 안을 상정하여 공포할(7월17일) 때까지 4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헌법이 지키자고 하면 성서이고 안 지키자고 하면 휴지 조각이듯 오래 걸릴 것만 같은 개헌 또한 디테일에 뜻만 맞으면 '뚝딱'이란 것을. 그러나 악마는 거기에 숨어있다는 것을.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권기돈, 『오늘이 온다』, 소명출판, 2022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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