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심상 이란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며칠 전 미국에서 나온 한 뉴스에 쓰인 문장이다. 조 켄트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CTC) 국장이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했다는 이 말에서 볼록하게 솟은 단어는 양심이다. 실로 오랜만이다. 양심(良心)이라는 낱말이 언론 보도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의 입에서 무겁게 거론된 것 말이다.
양심이 뭔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려는 의식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켄트가 보기에 이번 전쟁은 그르고 악할 뿐 아니라 명분도 없고 국가이익에도 반한다. 이스라엘의 로비 탓에 전쟁을 시작했다고도 의심한다. 켄트는 그런 양심을 누르고 전쟁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켄트가 한 말만으로 짐작해본 그의 생각이다. 켄트가 '양심적(양심을 올바로 지닌)' 공직자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들어맞을 추정인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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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켄트의 양심은 추앙받을 만한 것일까. 이 '양심적' 외에도 양심이 들어간 단어가 예부터 제법 쓰였다. 요즘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말이다. '양심범'은 사상이나 신념을 내세워 행동한 이유로 투옥되거나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다. 양심수라고도 한다. '양심선언'은 감춰진 비리나 부정을 양심에 따라 사회적으로 드러내 알리는 일을 말한다. 대개 권력기관이 저지른 비리나 부정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선언이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땐 '양심 세력'이라는 말까지 했다. 반독재 세력을 폭넓게 아우르려는 느낌으로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많던 '양심'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과거보다 쓰임이 크게 못하다. 그렇지만 양심이 꼿꼿하게 꽂혀 흔들림없이 우리의 나침판이 되어 주는 곳이 있다. 헌법이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제19조)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2항)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103조) 양심의 자유를 가진 이 땅의 모든 국민은 양심을 저버리는 국회의원이나, 헌법과 법률을 멋대로 적용하여 양심 없이 심판하는 법관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양심상 그럴 수 있냐고!"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연합뉴스 기사, '친트럼프' 美대테러센터 수장 사의 "이란전쟁 양심상 지지못해" (송고 2026-03-17 23:34) - https://www.yna.co.kr/view/AKR20260317187200071
2. 대한민국 헌법 - https://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3. 표준국어대사전
4. "나는 양심상 이란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영어 원문 I cannot in good conscience support the ongoing war in Iran.)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3월20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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