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떡국을 골백번 먹는다면…

1 month ago 6
고형규 기자

이번 설을 지내며 떡국을 먹었습니다. 비로소 한 살 더 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공간과 함께 존재를 조건 짓는 철학 개념의 시간을 잠시 잊어 봅니다. 대신, 하이얀 쌀떡처럼 하얘져만 가는 머리로 시간을 봅니다. 이마 위에 걸친 안경을 못 찾아 당황하는 건망증에서도 시간을 보며, 그런 친구 모습에 웃다가 뒷주머니에 모셔둔 휴대전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 친구에게 전화 걸어달라는 어수선함에서도 시간을 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나이는 '낳'으로 표기됐다고 합니다. '낳'은 동사 '낳다'의 어간입니다. 여기에 접미사 '이'가 붙어 나히가 되었다가 ㅎ이 탈락하여 나이가 됐다는 내력을 국어책은 전합니다. 무엇인가를 낳는다는 것과 한 살, 두 살 더 들고 변한다는 것의 이미지가 포개집니다. 어원은 흔히, 관계성을 귀띔합니다. 말 뿌리를 캐는 이유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비교 사진

훈민정음 해례본 비교 사진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DB)

예전에 속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에서 '하룻'의 뜻을 두고 더러 다투었습니다. 하루에다 사이시옷을 썼으니까 하루 된 강아지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지요. 정답은 그러나, 한 살 된 강아지입니다. 나이가 한 살 된 소, 말 따위를 이르는 말인 [하릅]이 [하룻]으로 변했다는 것이지요. 속담의 쓰임새를 떠올리며, 한 살쯤은 돼야 까불고 나댈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기억해 봅니다.

고유어 숫자를 알면 낱말 어장을 쑥쑥 키울 수 있습니다. 하나(一), 열(十) 다음으로 일백 백(百)을 의미하는 온이 있습니다. 제법 알려진 단어입니다. 온갖, 온 누리처럼도 쓰입니다. 즈믄(천)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즈믄 뒤를 잇는 골(만), 잘(억), 울(조)은 생소합니다. 이들 어휘로 골백번을 '직역'하면 골(만) 곱하기 백이므로 100만 번이 됩니다. "내가 그전에 골백번 말했지"라는 말은 뻥튀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온 이상 우리말 숫자는 대개 (아주) 큰 수나 여러 차례를 표현할 때 쓰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강재형, 『강재형의 말글살이』, 기쁜하늘, 2018

2. 이상권, 『무지 어려운 우리말겨루기 365 言편』, 북마크, 2017

3.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앤의서재, 2020 (서울도서관 전자도서관 전자책)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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