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나'를 따르기 어려운 말들, 본인상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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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영어를 익히던 때다. 말하는 '나', 곧 일인칭을 주어로 쓰지 못하는 표현이 있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가다(go)를 현재완료(have/has gone)로 쓴 주어는 그 주어가 '떠나고 지금 여기 없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나(내)'가 가버리고 여기 없으면서, "나는 가버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인칭도 마찬가지다. 가버리고 여기 없는 '너'인데, 부재한 너를 주어로 세워 "너는 가버렸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삼인칭뿐이다. 즉 "그는 가버렸어"라고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 '부고'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일, 이, 삼인칭을 나, 너, 그로 외운 기억도 새삼스럽다. 다시 다듬어서 새길 필요가 있다. 일인칭은 말하는 사람(화자)이 자기 또는 자기의 동아리를 이르는 인칭이다. 자칭(自稱)인 셈이다. 나, 저, 우리, 저희 따위가 있다. 이인칭은 듣는 사람(청자)을 말한다. 대칭(對稱)이다. 너, 너희, 자네, 그대 따위가 있다. 삼인칭은 화자와 청자 이외의 사람을 가리킨다. 타칭(他稱)이라고도 하며 그, 그이, 그들 따위가 있다. 이제 더 분명해졌다. '이곳'에 없는 '나'와 '너'가 각각을 주어로 하여 "가버렸어"라고 서로 말하고 들을 수는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미지 확대 '부음'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 본인상'이라고 표현한 부고를 또 만났다. 영어 이야기를 떠올린 이유다. ○○○ 부친상이면 ○○○ 부친의 별세를 뜻하니까 본인상은 ○○○ 자신의 별세를 뜻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썼을 수 있다. 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 자신이 별세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알리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 (본인) 별세'처럼 더 낫고 명확한 표현이 있는데도 굳이 왜 '본인상'을 고집하는지 궁금하다. 엄격하게 따지면 부고에서 상(喪)은 '잃을 상'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 부친상이라고 하면 ○○○가 부친을 잃은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자녀인 ○○○이 아니라 부친 △△△에 초점을 맞춘다면 △△△ 별세라고 부고를 쓰는 게 맞다. 애초 '자칭'을 앞에 둔 '상'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나를 잃었다고 어떻게 알린단 말인가.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박남일, 『우리말 풀이사전』, 서해문집, 2007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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