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조류를 이동 성향으로 구분하면 크게 철새와 텃새로 나뉜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 따르면 텃새는 한 지역에 머무는 새이고, 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새를 말한다. 철새는 다시 우리나라에 찾아와 머무는 시기를 기준으로 여름철새, 겨울철새, 통과철새, 길잃은철새로 구별된다. 대표적으로 제비, 꾀꼬리 등은 여름새, 기러기, 두루미 등은 겨울새다. 잠시 우리나라를 들르는 통과철새에는 도요새, 물떼새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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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예부터 사람에 많이 비유됐다. 말이 많은 사람에겐 촉새란 표현을 쓰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겐 꾀꼬리 같다고 한다. 흥부전에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왔다'는 대목이 있는데, 서울 강남 지역이 한참 개발 중이던 시절엔 제비가 안 좋은 의미로 쓰였다. 착실한 주부에 춤바람이 들게 해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춤 선생을 제비 또는 제비족이라고 불렀다. 연미복을 입은 것 같은 제비의 말쑥한 외양 때문인 듯하다. 제비족이 주로 강남에 출몰했는지 강남 제비란 말도 유행했다. 언론에서도 흔히 쓰던 표현이었다.
기러기도 자주 의인화된다. 수천㎞를 넘게 이동하는 장거리 비행의 상징이다. 우리가 잘 아는 '기러기 아빠'가 떠오른다. 자녀 유학을 위해 부인과 자식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보내놓고 국내에 남아 학비를 보내주는 가장을 뜻한다. 가끔 가족을 보러 항공편으로 장시간 날아가는 모습이 기러기 같다는 것이다. '기러기 엄마'도 있지만 주로 아빠가 많다. 뻐꾸기도 제비처럼 억울하겠지만 좋지 않게 비유된다.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게 하는 습성 탓에 친자가 아닌 자녀를 모르고 키우는 사례를 뻐꾸기 가정으로 비하했다. 이성에 추파를 던지는 것도 속어로 '뻐꾸기 날린다'고 표현했다. 요즘엔 '플러팅'이란 표현을 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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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란 생물학 용어 자체가 하나의 상징적 은유로 굳어진 분야도 있다. 알다시피 정치권이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들을 철새로 칭했다. 대통령선거 기간 탈당에 이은 출마로 결과를 극적으로 뒤바꿔놓은 정객도 있었고 걸어온 이력이나 정치 철학이 송두리째 부정될 만큼의 변신을 했던 사례도 있었다. 당적 변경 이후엔 한때 입이 마르게 칭송했던 동료나 선후배를 비난하는 정치인들도 많이 봤다. 그러고 보니 정치권은 참 비정한 세계다.
대선이 목전에 다가오니 다시 철새란 단어가 비난조로 정치권에서 오르내린다. '철새'와 함께 자주 쓰이는 클리셰인 '사쿠라', 배신자', '역사의 죄인'도 어김 없이 재등장했다. 대선판이 과열될 때마다 듣던 단어라 새롭지도 않다. 다만 철새만큼이나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말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도 떠오른다. 당적 변경을 남이 하면 '철새',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이라 주장하는 건 정치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같아서다. 과연 유권자들은 우리 정치인들이 흔들리지 않는 철학과 신념을 갖고 장기적 국가 발전을 설계하는 정치를 한다고 믿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려 참고한 과학 문헌의 소제목이 '철새 이동경로 연구'이다. 조류 대신 정치권 철새의 이동 경로도 한 번 연구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잡념이 잠시 들었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30일 09시19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