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요즘 뜬 심리학 개념 중 '메타인지'가 있다. 우리말로 '자기 객관화'로 풀이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별하고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사이의 격차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떨어지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예컨대 10점 척도에서 직장 상사나 동료는 내 능력을 3으로 보는데, 나는 9로 믿는다면 그 불일치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 회사를 비롯한 조직 속 많은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개인별 차이가 있겠지만 서구 선진국과 우리의 민도를 비교하면 대체로 한국인은 메타인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필자도 한국인이니 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건 최근 국내외 정세를 바라보며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메타인지 주체를 국가로 놓고 세계 속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자.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처럼 우리가 잇단 비극을 겪은 건 국내와 국제 정세를 연결 짓지 못하는 좁은 시야 탓이 크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18세기 산업혁명 열풍 속 주요국들이 숨 가쁘게 발전할 때 우리는 문을 걸어 잠갔다. 남들이 신대륙과 식민지를 개척하던 대항해시대엔 제사 지내는 방법을 놓고 오랜 세월 국력을 소모했던 나라다. 그동안 이웃 일본은 개항과 개혁 조치를 통해 아시아의 대국으로 성장했다. 주변 4강이 대립하던 조선 말엔 어땠을까. 당시 왕조는 별 분석조차 없이 4대 강국 중 하필 최약체에 운명을 걸었다. 일련의 실기들이 누적된 결과는 알다시피 일제 강점과 분단, 6·25 전쟁 등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가 국제감각이 좋고 정세 변화를 잘 읽는 국민이라 강변한다면, 그 증상이 바로 메타인지 결핍증이다. 사람 성정 잘 안 바뀌듯 집단 DNA도 변하긴 쉽지 않다. 역사는 주체들이 변하지 않을 때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더 두렵다. 한 나라의 메타인지가 부족할 때 경쟁국들은 그 약점을 파고든다. 속칭 '국뽕'으로 불리는 맹목적 애국주의도 메타인지 결핍 증세에 속한다. 이는 쇼비니즘을 부를 수 있고 심하면 파시즘으로까지 악화한다. 남미 국수주의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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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변 정세는 조선 말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의 팽창주의는 여전하고 북핵은 한반도 지정학 리스크를 계속 악화시킨다. 인도가 신흥 강자로 부상하는 가운데 일본은 조용히 미국과 밀착을 다져가고 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발전도 주목된다. 이 와중에 불거진 미·중 무역 전쟁은 수출 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를 더 옥죄이고 있다. 우리 산업과 기업, 정부와 노동 시스템이 어떤 비교 우위와 경쟁력을 지녔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 메타인지를 통해 돌아볼 때다. 미·중 충돌이 본질적으로 헤게모니 다툼임을 고려할 경우 우리의 활동 공간은 더 좁아지니 더 정교한 대응이 필요해진다.
이런 정세 속에 대통령선거가 열흘 남짓 다가왔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벌써 두 번째 조기 대선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누가 다수를 설득하냐의 싸움이다. 결과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이를 촉발한 계엄 명령이 그 시기와 사유 등에서 다수 국민을 납득시킬 개연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다수다. 그 배경에는 명령 주체인 대통령의 인식이 평소 대중과 다소 괴리됐고 주변 조언보다 자기 판단을 과신하는 성향을 보였던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어디까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 역시 메타인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미 투표할 후보를 정한 유권자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이번엔 중도하차 없이 임기 동안 대한민국호를 잘 이끌어갈 메타인지 충만한 후보를 뽑아주길 기대한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23일 09시59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