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관객을 모으는 것조차 버거운 극장가에 손익분기점이 무려 600만 명인 초대형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이야기다.
'전독시'는 2018년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 연재를 시작해 누적 조회수 3억 뷰를 기록한 인기 웹소설로, 2020년부터는 웹툰으로도 연재되며 탄탄한 팬덤을 형성한 슈퍼 IP다.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리얼라이즈 픽쳐스가 제작을 맡았고, '더 테러 라이브'(2013), 'PMC: 더 벙커'(2018) 등을 연출한 김병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나나, 블랙핑크 지수, 신승호 등 신선하면서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야기는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을 유일하게 완독한 독자 김독자(안효섭)가 작가에게 "이 소설은 최악"이라며 결말에 대한 불만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며 시작된다. 작가로부터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시면 직접 써보시죠"라는 답장을 받은 김독자는 실제로 소설의 첫 문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이 현실이 된 것이다. 자신만이 결말을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된 김독자는 '혼자 살 것이냐, 함께 갈 것이냐'는 선택 앞에서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크리처들이 사정없이 달려드는 소설 속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은 주인공 김독자와 함께 지하철 3호선에 나란히 앉힌다. 퀘스트를 수행하며 소설 속 세계를 누비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빠르게 몰입된다. 실사화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온 원작을 김병우 감독은 정공법으로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화를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돋보이며, 과감한 연출로 승부수를 던진다.
시사회 이후 반응은 엇갈렸다. '원작을 보지 않았거나', 'RPG 게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작품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감겨들 수 있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원작의 열렬한 팬'이거나 '게임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손익분기점이 6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범용성이 요구되지만, 중장년층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예고편 공개 이후 원작 팬덤 사이에서는 이 영화는 꾸준히 '뜨거운 감자'다. 한 영화 리뷰 유튜버는 시사회 후 "원작 팬들이 예고편만 보고도 대사 한줄 한줄 지적하는 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앞으로의 논란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계 관계자는 "원작 팬덤의 거센 항의를 받을 것 같다"고 점쳤다.
'천만 시어머니들이 등판할 것 같다'는 반응에 김병우 감독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모르시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건 뭐건, 어떤 식으로든 보시고 반응해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예상 가능한 논점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내 취향대로만 밀어붙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그분들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지를 더 먼저 고민했다. 처음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아울러 "너무 재미있고 신선한 세계인데, 이걸 어떻게 영화로 구현할지 감이 안 잡혔고 실사화했을 때 관객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장르적으로도 판타지 SF라고 단순히 분류할 수 없고,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드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놨다.
◆ 진입장벽 ① '국뽕' 돋는 배후성 설정 생략, 원작 파괴 아냐?
팬덤 내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원작의 핵심 설정이었던 '배후성'이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후성이란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와 같은 한국 역사 속 위인들이 주인공에게 힘을 나눠주는 것을 뜻한다.
김 감독은 "정확히 말하면 제거한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풀기 위해 미뤄둔 것"이라며 "정보가 너무 많으면 관객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차후 후속편을 만든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접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지적 독자 시점'의 핵심은 포지셔닝이었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장르인지 뿌리를 다지는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 진입장벽 ② 충무공 이순신이 배후성인데 총 들었다?…지수를 둘러싼 논란
유중혁(이민호)을 사부라 부르며 총을 다루는 고등학생 '이지혜' 역의 지수는 원작에서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두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칼이나 활이 아닌 '총'을 사용한다. 김 감독은 "원작에서 다른 캐릭터들도 칼이라는 무기를 많이 쓴다. 시각적으로 전투 장면에서 차별화를 주고 싶었다"며 "다양한 무기를 시도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논란에 대해 "예측을 못 했다", "그 지점을 놓쳤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긴 했지만, 다음 편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며 후속편에서의 보완 가능성도 시사했다.
'뉴토피아', '설강화' 등 시리즈물을 통해 단련했음에도 지수의 연기력은 발전이 없어 보인다. 지수는 등장부터 부족한 발성, 몰입을 떨어뜨리는 감정 연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원작에서 이지혜는 중요한 캐릭터로 분량이 많음에도 '전독시'에서 지수는 5분 분량에 불과하다. 김 감독에 따르면 지수의 분량은 편집된 것 없이 시나리오상에서 했던 그대로였다.
그는 "지수의 등장 타이밍이 상당히 늦다. 절반이 지난 다음 나오는 건 시나리오 작업상 반칙이다. 원작상에서도 굉장히 길게, 큰 비중으로 존재하는 인물이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등장 타임을 당길 수도 없고 지수가 한다면 대중이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감이 부각될 거라는 생각이었다"라고 밝혔다.
연기력 논란에 대해 "그런 지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주 잘 된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지수가 아니었다면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을 법한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 진입장벽 ③ 안효섭이 김독자? 캐릭터 해석, 이게 아닌데
안효섭이 연기한 김독자 캐릭터 해석에 대해서도 팬들의 의견은 갈렸다. 원작의 독자는 비굴하거나 소극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영화 속 김독자는 초반부 지하철 장면 등에서 다소 '찐따'처럼 묘사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원작 팬은 "김독자가 유중혁에게 자길 떨어뜨리지 말라며 빌다가 손을 놓으니 '유중혁, 이 개새끼야'라고 욕한다. 원작에서 김독자는 '그만 이 손 놓고 꺼져. 빌어먹을 새끼야'라고 말하고, 이에 유중혁은 '확실히 넌 예언자가 맞군'이라고 말한다. 원작과 영화의 이미지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은 "독자란 인물을 생각했을 때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갖춘 인물로서 김독자를 해석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효섭을 처음 보면 평범하다고 느낄 순 없을 거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출연작들을 살펴보니 그 보편성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계에서 캐스팅을 할 때 나름의 '모집군'이 있을 텐데 거기에서 벗어난 캐스팅으로 신선함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안효섭은 "원작의 인물을 토대로 만들기보다 저만의 김독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어느 무리에 섞여 있어도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보편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안효섭은 '독자'가 되기 위해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그는 "컷하고 나면 '혹시 제가 멋있지 않았나요'라고 감독에게 물었다"며 "독자는 그런 멋진 인물이 아니다. 모두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으로 나와야 했다"고 전했다.
◆ 진입장벽 ④ 서사 축소… "시나리오 작업 초기부터 정해둔 규칙"
김독자와 팀을 이루는 유상아(채수빈), 이현성(신승호) 등 주변 인물들의 과거 서사가 영화에서는 대폭 축소됐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원작에서는 이들이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지만, 영화에서는 같은 지하철을 탔을 뿐 서로 잘 모르는 인물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설정했다"며 "시나리오 작업 초기부터 정해둔 규칙"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처럼 스포트라이트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연이나 단역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소설로 들어간 김독자도 마찬가지다. 소설 안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만나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나름의 규칙에는 부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전독시'의 원작자인 싱숑 작가는 특별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고, 시사회 후 김 감독에게 "아주 재미있게 봤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김 감독은 "저도 원피스를 실사화한다고 하면 팬으로서 분노할 수 있다"며 "이 영화는 원작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부록처럼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아직 창고 안에는 보여줄 재료가 많다.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후속편이 제작된다면, 더 많은 원작의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판은 벌어졌다. '전독시'가 한국형 판타지의 한 획을 긋게 될지, 아니면 팬덤의 민감한 촉수를 건드리는 계기가 될지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스크린이 꺼진 후 쏟아지는 말들, 각자의 해석과 감상이 교차하는 그 순간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원초적 즐거움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