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샷의 기적' 만든 '최경주 아일랜드'…프로들도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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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오른쪽)와 박상현이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을 앞두고 14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최경주 아일랜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최경주(오른쪽)와 박상현이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을 앞두고 14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최경주 아일랜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와... 역시 쉽지 않은데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총상금 13억원)의 연습라운드가 열린 14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파72).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코스 점검에 나선 선수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었다. 바로 18번홀(파4) 그린 옆 워터해저드에 떠 있는 작은 섬. 작년 이 대회 챔피언 최경주(55)가 연장전에서 여기 떨어진 공을 완벽한 어프로치로 살려내며 KPGA투어 최고령 우승에 핵심적인 샷을 만들어낸 자리, '최경주 아일랜드'다.

'최경주 아일랜드'가 핀크스GC의 '성지'로 떠올랐다. SK텔레콤오픈을 앞둔 선수들은 작년의 최경주처럼 그 섬에 공을 떨구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그 자리에서 어프로치 샷을 시도하며 한국 남자골프의 명장면을 추억했다. 이 섬의 앞에는 '최경주 아일랜드 2024 SK텔레콤 오픈 우승 기념'이라고 새긴 기념석도 생겼다.

작년 이 대회에서 최경주는 박상현(42)과 2차에 걸친 연장혈투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18번홀에서 치러진 첫번째 연장에서 최경주의 두번째 샷이 그린 앞 워터해저드로 향했다. 물에 빠지면 벌타를 받고 쳐야하기에 우승의 추가 박상현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최경주의 공은 기적적으로 그린 옆 작은 섬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대로 스탠스를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은 땅에서 최경주는 완벽한 어프로치 샷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해 승부를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렸고, 두번째 연장에서 보기를 범한 박상현을 파로 누르고 우승을 완성했다. 이 우승으로 최경주는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새로 썼다.

이날 연습라운드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섬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같은 조 선수들과 그 섬에 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두번째 샷을 치는 챌린지를 하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단번에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제주 특유의 단단한 현무암으로 둘러쌓인 네발짝 남짓한 폭의 땅을 적중하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정확성과 행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이 그 섬을 둘러싼 워터해저드에 빠졌고, 섬을 맞추더라도 바닥에서 튕겨져나가기 일쑤였다. 섬 주변의 개울에는 선수들이 떨군 공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을 그린에 잘 올린 선수들도 이 섬에 따로 공을 두고 '최경주의 완도샷'에 도전했다.

양지호가 14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그린 옆 '최경주 아일랜드' 옆에서 어프로치샷을 시도하고 있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양지호가 14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그린 옆 '최경주 아일랜드' 옆에서 어프로치샷을 시도하고 있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많은 선수들이 "(최경주 프로의 샷이)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조우영(24)은 "쉽지 않았다. 공간이 너무 없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지호(39)는 최경주 아일랜드를 공략했지만 조금 흘러내려 바로 옆 돌에 공을 떨어뜨렸다. 완도와 육지를 잇는 '완도대교'쯤 되는 자리였다. 이 공과 섬 한가운데 별도로 드롭한 공으로 각각 어프로치샷을 한 그는 "저도 최경주 프로님처럼 최종라운드에서 이 샷으로 파를 만들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였다.

역사의 주인공 최경주는 어땠을까. 이날 대회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난 월요일 재능나눔 라운드를 하면서 슬쩍 가봤는데 등이 오싹해졌다. 다시 보니 새삼스레 기도 안차더라"라고 말했다. "어떻게 여기에 공이 섰는지 신기할 정도로, 스윙을 할 수 없을만큼 작은 땅을 보니 다시 한번 (당시의 샷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 섬이 저를 살려준 것은 맞지만, 올해는 그 쪽으로 치지 않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 섬 때문에 우승을 놓친 박상현도 여기를 들러봤다고 했다. 경쟁자 최경주가 위기의 상황에서 기적같은 샷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하면서 박상현의 우승 추격 불씨는 급격히 사그라들었기에, 그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법한 장소다. 그는 "작년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오늘 연습 라운드 중 살짝 들러보며 '나도 한번 해볼까?' 했지만 하지는 않았다"고 웃었다.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그린 옆에 자리한 '최경주 아일랜드'. 섬을 둘러싼 개울에는 골퍼들의 도전을 보여주는 공이 가득하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18번홀 그린 옆에 자리한 '최경주 아일랜드'. 섬을 둘러싼 개울에는 골퍼들의 도전을 보여주는 공이 가득하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선수 뿐 아니라 일반 골퍼들의 '완도샷'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골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핀크스G를 찾는 대부분의 골퍼가 이 섬을 찾는다. 작년보다 이 섬의 잔디가 많이 줄어든 이유다.

핀크스GC에 따르면 작년 대회 이후 18번홀에서 최경주처럼 최경주 아일랜드를 거쳐 파를 기록한 골퍼는 단 한명 나왔다. 인위적으로 이 섬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샷을 통해 섬에 공을 떨구고, 파를 기록하는 것은 프로들에게도 기적같은 플레이인 탓이다.

워낙 많은 골퍼들이 최경주 아일랜드를 사랑하고, '완도샷'을 시도하면서 핀크스GC도 기념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경주 아일랜드를 거쳐 파에 성공한 골퍼에게 핀크스GC 라운드권(1개팀)을 선물한다. 최경주의 고향인 전남 완도도 완도치유센터 이용권을 선물하기로 했다. 핀크스GC측은 이 자리에 최경주의 플레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우고 포토존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경주가 타이틀 방어와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경신, 이 대회 다섯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SK텔레콤 오픈 2025는 15일 막을 올린다. 최경주와 박상현이 리턴매치를 펼치는 가운데 직전대회인 KPGA클래식 우승자인 배용준(25)이 같은 조에서 경기한다. 이들은 오후 1시 8분 티오프 한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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