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 원산지 영양군, 조지훈·이문열 배출한 충절의 땅
저출산·초고령화 심각, 서울·고양 면적에 인구 1만5천명
난민 유치 추진 논란…인근 안동에 의대 설립 목소리 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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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김형동·강명구 의원실, 안동대 등이 주최한 '경상북도 국립의과대학 신설 촉구 국회토론회'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참석자들이 의대 신설을 정부에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1.26 utzz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작지만 매운 청양고추의 원산지, 밤하늘 자작나무 숲 위에 은하수가 펼쳐지는 별의 정원, 한국의 별천지 경북 영양군이다. 영양은 대쪽 선비의 땅이기도 하다. 영양의 한양조씨 집성촌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1960년 4·19 혁명 직전 펴낸 수필 '지조론'에서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장사꾼, 창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적으며 대통령 이승만의 변절과 타락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6·25 동란 때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 아버지와 좌익 활동가 어머니를 둔 이문열은 연좌제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영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문열이 초등학교 일진 '엄석대'의 몰락을 통해 격변기 한국의 비겁한 인간상을 묘사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무대인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웅대한 기상을 품은 영양이 지방 인구 소멸의 대표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서울과 고양시를 합쳐놓은 넓디넓은 땅인데도 인구가 1만5천여명, 서울과 비교하면 한남동 수준이다. 초고령화 속에 신생아 수가 20명대로 줄어 이르면 올해 안에 1만5천명 선마저 붕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현직 공무원 및 공무직, 그 친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사태가 심각해지자 군청이 서울과 대구 등 외지로 나간 군 소속 공무원 가족과 친지들의 주소를 영양군으로 옮기도록 권유하고 최대 1억원이 넘는 출산 지금을 내거는 등 총력전을 펴고 나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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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소비면의 별관측 [촬영 성연재]
영양에선 인구 위기 해소를 위해 교도소 유치에 사활을 건 인근 청송군처럼 기피시설이라도 유치해 숨통을 틔우자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미얀마 난민 40명가량을 데려오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인구 대책의 일환이다. 군은 난민을 위한 거주지로 폐교 활용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놓고 법무부와 협의 중이라는데,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선 "난민에 테러리스트가 있다", "민생이 파탄 지경인데 난민까지 먹여 살려야 하느냐", "공무원들이 제 밥그릇 지키려고 별 짓 다 한다"는 등 악플이 난무하고 있다.
지역에선 효과적 대안으로 의과대학 설립도 거론되고 있다. 때마침 안동대와 경북도립대가 통합한 '국립경국대학교'가 이달 초 출범하면서 의대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인근 경국대에 공공 의대가 생기면 강남 대치맘들이 초등생 자녀와 함께 지역에 몰려올 것이란 전망이 담겨있다. 사직 전공의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인데, 어쩌다 별천지 영양이 인구 전멸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13일 11시28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