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배신·야합의 개헌논의…이럴 바엔 AI가 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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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 내각제 합의 파기로 김종필 배신

노무현·이명박·박근혜, 국면전환용 카드로 개헌 활용

정계 원로들, 대통령 눈치보다 지금와서 개헌운동 주도

'다이내믹' 국민성 맞게 연성헌법 도입 적극 검토해야

이미지 확대 1990년 1월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노태우 대통령

1990년 1월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노태우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90년 10월25일 내각제 밀실 합의서가 언론 보도로 공개됐다. 문건에는 민정당 소속 노태우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김영삼(YS), 공화당 김종필(JP) 총재가 3당 통합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을 한다는 조항과 3자 서명이 담겼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어졌다. 대표최고위원 YS는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내각제 파동이 YS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노태우는 개헌을 포기하고 YS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충청권을 뒷배로 수상(首相)을 꿈꾸던 김종필은 헛물을 켰다.

▶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 자민련 김종필의 DJP 연합이 성사됐다. JP가 DJ의 손을 잡으면서 요구한 것은 공동 정권 운영과 내각제 개헌이었다. 호남의 지역적 한계와 친북·용공 프레임에 갇혀 있던 DJ는 JP의 서울 신당동 집으로 찾아가 2년 안에 내각제 개헌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DJ는 정권을 잡자 변심, 2년도 안 돼 약속을 파기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그 이유로 내세웠지만, YS가 그랬듯이 JP와 결별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JP는 2000년 총선에서 참패하며 노(老) 정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DJ의 뒤를 이은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도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다 버렸다. 분권형 개헌론자였던 노무현은 집권하자 현행 헌법 틀 내에서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면 된다고 하더니 임기 말 대통령 연임제로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가 욕만 먹었다. 이명박은 임기 중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자 '제한적 개헌'을 꺼냈다가 여당 내 야당인 친박근혜계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도 전임자들처럼 개헌의 개 자(字)도 말하지 않다가 '최순실 국정 농단 ' 의혹이 갈수록 불거지자 개헌을 제안해 국면 전환용 꼼수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미지 확대 한나라당 지도부, 노무현 대통령 개헌 철회 환영

한나라당 지도부, 노무현 대통령 개헌 철회 환영

(서울=연합뉴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철회로 국론 분열을 막게 돼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 2007.4.16 / srbaek@yna.co.kr

▶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이번이 개헌의 적기라며 정계 원로와 여당을 중심으로 개헌 제안이 분출하고 있다. 개헌은 이제 민주당 이재명 대표 손에 달린 형국인데, 집권 자신감 때문인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지금은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이 대표를 압박하는 원로들은 과거 대통령 심기를 살피며 개헌을 입 밖에도 내지 못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들 개헌 전도사가 돼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엊그제 '개헌촉구 범국민서명운동'에 들어갔다는데 먼저 과거사에 대해 유감 표명이라도 하는 게 정치지도자로서 도리가 아닐까.

▶ 이제는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대결 정치 시스템을 끝내지 않고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데 국민의 뜻이 일치해 있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제만큼은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개헌 횟수에 굳이 얽매여선 안 된다는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성미 급한 '다이내믹 코리아' 국민성과 현란한 사회 변화 속도에 맞게 헌법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연성(軟性) 헌법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배신과 야합을 밥먹듯 하는 정치인의 행태를 돌아보면 불편부당한 인공지능(AI)에게 물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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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촉구하는 정계 원로들

(서울=연합뉴스) 4일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 대담회에 참석한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왼쪽) 등 정계 원로들의 모습. 2025.3.4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07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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