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너무나도 닮은 의료계와 정치권…모든 건 '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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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백기 투항에도 의료계 황당한 요구조건 달아

말 폭탄 뒤에선 저자세…관료들 尹에 할 말 했어야

의료파업이든 탄핵이든 '법대로' 하면 만사 풀려

이미지 확대 국회 간 김택우 의협 회장과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

국회 간 김택우 의협 회장과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손뼉을 치고 있다. 2025.3.10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의료계 파업 사태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신입생 정원을 '2천명 증원' 조치 이전의 3천58명으로 동결하겠다고 제안하자 의료계가 또 다른 요구 조건을 내걸며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학에선 졸지에 증원 혜택을 본 의대 신입생들이 선배들로부터 해코지당할까 두렵다는 핑계로 수업 거부에 동참하고, 전공의들은 의료인에게 주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군인과 경찰 등 공무원과 의사, 항공기 조종사는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주 52시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의사 직종의 특성을 떠나 직장인이자 의술을 배우는 학생이기도 한 전공의가 노동착취 대상일 뿐이라는 그들의 인식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수긍할지 의문이다. 한술 더 떠 의료계를 대표한다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내년에 의대생을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수험생과 부모야 어찌 되든 말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집단 이기주의의 극치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의료 파업이 아노미 상태가 된 것은 정부의 무능 탓이 크다. 양대 노총 파업에는 공권력을 동원하며 강력 대응했던 정부는 유독 의사집단에 대해서는 갖은 예외와 특혜를 주며 저자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에선 말폭탄만 던지면서 뒤로는 퇴로를 열어주더니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자 기다렸다는 듯 백기 투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통령과 정권 눈치 보기 급급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빚어낸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시골의 환자까지 KTX를 타고 서울로 몰리는 현실을 도외시 한 채 무턱대고 지방 대학에 의대생만 늘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정부의 고루하고 경직된 사고가 화를 불렀다. 의대생들의 웰빙 풍조와 배금주의 확산을 모를 리 없는 관료들이 필수의료 보완재로서의 국군 의무사관학교 설립 등 의료계 일부에서도 지지를 받는 대안을 윤 대통령에게 내놨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지 확대 윤 대통령 구속취소 후 여야 지도부

윤 대통령 구속취소 후 여야 지도부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받아들인 7일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이상 왼쪽)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모습. 2025.3.7
kjhpress@yna.co.kr

따지고 보면 의료계의 행태는 정치권과 너무나도 닮았다. 여야는 국정과 경제에 골병이 들든 말든 너 죽고 나 살면 된다는 식의 무한 대결 정치로 일관해왔다. 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부터 반대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시작부터 저해했고, 여권은 야당의 제안에 사사건건 거부권으로 맞서며 여야관계 경색을 심화시켰다. 여권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사법 리스크로 옥죄면 옥죌수록 야권은 김건희 여사를 표적 삼아 거대 의석의 힘으로 정권을 몰아세웠다. 탄핵 정국은 양보 없는 극한 대립의 최종 결과물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을 둘러싼 좌우 대립처럼 의료계 파업은 의사 집단의 오만과 국민들의 분노 사이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다. 쟁점은 협상으로 풀어야 하지만 타협이 불가능하면 국민 다수와 집단지성의 힘으로 매듭짓는 다수결이 원칙이다. 정부는 더는 좌고우면해선 안된다. 정치권도 헌재에서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정이 나면 승복해야 하고, 거기에 어떤 조건도 달아선 안된다. 만사 '법대로' 하면 당장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풀리기 마련이다. 법이 아니라 법을 안 지키는 게 문제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12일 06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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