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범 아닌 피해자” 허점 파고든 특검
이런 차원에서 계엄 당일 국무회의가 열리는지 몰랐거나 뒤늦게 연락을 받고 이동 중에 계엄 선포를 알게 된 국무위원은 헌법상 심의권을 국무회의 주재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박탈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무위원 9명이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불참한 국무위원들이 계엄의 공범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만약 참석했다면 계엄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말할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한다. 특검으로선 허점을 잘 파고든 것이고, 윤 전 대통령은 허를 찔린 셈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에 국무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렸으며, 절차상 하자가 일부 있었더라도 계엄과 같은 비상조치에는 국무위원의 동의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올 2월 헌법재판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무회의 없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논리가 통째로 무너졌다. 영장심사 때 금융실명제 직전 국무회의가 열렸고, 동영상과 회의록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 인터넷 검색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무회의 기록을 수개월째 없었다고 주장한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게다가 비상계엄과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반드시 국무위원 전원의 부서(副署)가 필요하다는 행정안전부와 법제처의 업무 기준까지 나왔다. 공교롭게 윤 전 대통령의 고교 후배와 대학 동기 법조인이 각각 기관장이라 윤 전 대통령으로선 더 할 말이 없게 됐다. “전두환은 왜 국무위원 전원의 부서를 받았겠나”라는 말이 특검에서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드러난 9가지 직권남용은 빙산의 일각
윤 전 대통령 재수감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전두환은 계엄 때 무장한 군인이 있는 곳에서 강압 상태로 국무회의를 연 것이 문제가 돼 내란죄 유죄가 확정됐다. 윤 전 대통령은 국무위원 동의 절차를 아예 생략한 데다 사후에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동의한 것처럼 선포문을 조작한 혐의도 받고 있다. 내란죄 방어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특검은 국무위원들, 경호처 관계자, 대통령비서관 등 3가지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했다. 이미 계엄 당일 국회와 선관위에 병력을 부당하게 투입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군 특수전사령부 등 6개 기관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으로선 설상가상인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외환과 관련한 드론작전사령부뿐만 아니라 계엄 해제 표결 방해에 관여한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직권남용의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그간 말하지 않았던 피해 사실을 특검에서 적극적으로 진술할 수 있다.실패한 수사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고육지책으로 적용하던 직권남용이라는 도구를 윤 전 대통령은 검사 때 마음껏 휘두른 업보가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재직 중엔 직권남용형 명령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직권남용 직접 피해자만 수십 명, 간접적으론 수천 명을 넘어섰다. 3대 특검 수사가 끝나면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지경이 되도록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윤 전 대통령의 모습에 제 살길을 찾는 ‘피해자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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