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 검증이 철칙인 조종실과 수술실
병원 수술실에선 집도의와 마취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집도의가 환부에 집중하는 동안 마취의는 환자의 호흡과 혈압, 산소포화도 등 생명 신호를 살핀다. 한 사람은 나무를, 다른 사람은 숲을 보는 것이다. 마취의가 환자 상태가 위험하다며 수술 중단을 요구하면 집도의는 따라야 한다. 간호사들도 메스나 바늘, 거즈 등 기구가 환자 몸에 남아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수술 전후 개수가 일치하는지 크로스 체크를 한다.
조종실과 수술실은 베테랑 기장이나 명의에게 기대지 않는다. 서로의 오류를 발견하는 시스템으로 승객과 환자의 생명을 지킨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할 수 있지만, 한 번 그르치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에선 범죄 수사도 다르지 않다. 수사는 오류 가능성이 특히 더 크다. 관련자들 진술은 엇갈리고 기억은 불완전하며, 수사관도 확증 편향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성과 압박이나 기관 이기주의 같은 외부 변수까지 끼어든다. 게다가 인력과 시간이 제한돼 있어 1차 수사는 누가 하더라도 결론이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눈으로 사건을 보고, 뻔해 보이는 것도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법원은 부족한 수사를 보완해 주지 않는다. 증거가 불확실할 땐 무죄를 선고할 뿐이다. 중범죄자를 부실하게 수사해 솜방망이 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이 생겨 같은 범죄 사실로는 다시 기소할 수 없다. 성폭행 목적으로 여고생을 살해했다고 뒤늦게 시인한 장윤기 사건만 봐도 그렇다. “단순 살인”이라는 경찰 수사 결과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기소해 유죄가 확정됐다면 나중에 강간 증거가 나오더라도 죗값을 묻기 어려웠을 것이다. 검경은 별개 기관이지만 최선의 수사 결과를 법원에 내놔야 하는 공동 운명체이기도 하다.그간 경찰 수사의 빈틈을 메워 온 검사의 보완수사를 더불어민주당은 전면 폐지하겠다고 한다. 검사에게 조금의 수사권이라도 남겨주면 어떻게 악용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개시하거나 경찰 수사를 지휘할 권한이 박탈된 상태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덮어버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처럼 권한을 남용할 여지는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일부 검사가 보완수사를 핑계로 정치적 수사를 시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것도 경찰 수사에 대한 교차 검증을 제한하는 데 따른 부작용에 비하면 ‘작은 구멍’이다. 검사에게 보완수사 요구권을 준다고 하더라도 검증의 공백을 메우기엔 한계가 있다. 차라리 보완수사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를 강화하는 게 상식적이다.
‘피로 쓴 프로토콜’ 보완수사에도 필요
조종사들은 비행에 나설 때 서로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중요한 건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맞느냐다.” 참담했던 사고 뒤엔 대개 실수와 오판이 있었고, 그 결과 교차 검증이 제1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조종사들은 이를 “희생자들의 피로 쓴 프로토콜”이라고도 부른다. 보완수사 역시 검사를 믿을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이 수사 실패를 막는 최선의 시스템인지가 중요하다. 이건 정치도 이념도 아닌, 프로토콜의 문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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