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 이곳에는 핵 원료를 뺀 연구용 ‘미니 원전’이 건물 안에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미니 원전을 대형 선박에도 실을 수 있고 모듈화해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 ‘배송’할 수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아직 개발 단계인데도 와이오밍주에 부지를 선정해 실증단지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실험적인 원자로 건설에 있어 부지 선정이 가장 큰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우리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5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덕에 신규 원자로 허가 심사 기간이 대폭 줄어 순조롭게 2030년 원자로 가동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변전소 증설도 어려운 韓우리 정부도 첫 SMR의 203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SMR의 최대 장점은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단지와 같은 수요지에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술 개발에 성공해 상업 가동 능력을 갖추더라도 주민들의 반대, 이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의 우려를 극복하고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속도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험적 원자로보다 훨씬 단순한 변전소 건설조차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전력이 사업을 추진한 지 5년이 됐지만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동해안의 값싼 전기를 수도권 반도체 산업단지 등에 공급하기 위한 관문이지만 인허가 갈등에 지지부진한 상태다. 변전소 증설 하나에 소송전, 1인 릴레이 시위, 전 국민 호소문까지 등장해야 하는 현실 속에 AI 전력망 확충은 요원한 얘기처럼 들린다.
원전, SMR, 태양광 등 발전원이 전력을 만드는 공장이라면 송전망은 전력을 실어 나르는 고속도로, 변전소는 분기점이나 톨게이트 역할을 한다. 공장 생산능력이 부족해도, 고속도로가 너무 좁아도, 분기점이 제 역할을 못 해도 전력난이 발생한다. 동해안에 민간 발전사들이 수조 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어도 하남시 변전소 문제로 10%밖에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발전소도 변전소도 모두 땅이 필요하니 곳곳에서 벌어질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AI 전력 기근, 美도 “정전 100배 늘 것”문제는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검색 한 건보다 챗GPT 답변 하나가 전력을 10배 잡아먹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용 전력 수요만 향후 5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너무 덥고 추운 이상기후도 전력 부담을 가중시켜 대규모 정전 공포는 커지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8일(현지 시간)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2030년 정전 발생이 지금보다 100배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빅테크들이 천문학적 전력 투자에 나선 미국조차 여전히 발전원과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는 곳도 나오고 있다.
AI 전력 기근 속에 우리도 인허가 절차 등을 간소화하는 ‘전력망 특별법’이 9월에 시행된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지역 곳곳의 이해관계를 풀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AI 고속도로 건설’을 내건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산업 인프라 확충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가장 잘해 온 분야였다. 산업화 시기에는 고속도로를, 정보화 시대에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새로운 산업의 탄생을 뒷받침해 왔다. 새 정부도 하루빨리 구체적인 에너지 발전원 확보 전략과 더불어 전력망 확대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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