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운동선수 전성시대다. 특히 방송에서 그렇다. 스포츠 콘텐츠는 콘텐츠로서의 흥미와 새로운 소재를 좋아하는 미디어 특성, 그리고 비즈니스 속성이 절묘하게 맞물려 폭발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경기 중계와 뉴스가 스포츠 콘텐츠의 전부였다. 물론 한때 양적으로 크게 늘어난 적도 있었다. 1981년 국내 방송에서 스포츠의 편성 비중은 8%였지만 1982년 12%, 1983년 20%로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서울에서 열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정권적 과제(?)에 따른 기현상이었다.
그러나 단언컨대, 지금은 TV를 틀면 반드시 어떤 채널이든 스포츠를 중계하거나 선수 출신이 입담을 뽐낸다. 그야말로 ‘예능의 스포츠화’가 진행 중이다. 카메라는 여성 선수의 ‘걸크러시 매력’을 잡아내고, 덩치 큰 남성 선수들의 우직한 멋을 놓치지 않는다. 방송은 운동선수의 재발견을 통해 새 수입원을 창출하는 중이고, 전현직 선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스포츠의 예능화’도 일어난다. 문제는 없을까? 일단 ‘유사 스포츠’가 되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전직 메이저리거는 골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트로크를 하지 않고 끌어당기는’ 퍼팅을 해 보는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이는 명백히 골프 규칙에 어긋난다. 골프를 모르는 시청자는 잘못된 정보를 가질 수 있다. 경험의 왜곡도 아쉽다. 스포츠를 하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 성찰의 기회가 재미와 흥미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넓은 의미의 스포츠 체험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얻는 ‘깨달음의 순간’과는 괴리가 있다.많은 선수가 은퇴 후 방송 진출을 꿈꾸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트 선수 교육 시스템에 허점이 있진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기술의 완성과 성적만 추구하다 보니 특정 종목에서 일가를 이뤘을지언정 정작 종목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깨달을 기회를 갖지 못한 건 아닐까. 단련 과정에서 스포츠인의 가치를 깨닫고 자연히 인격적 성숙을 이뤄 갔다면 성적과 연봉, 명성 그 이상을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카메라 앞보다는 어린 선수들 앞에 더 자주 서고, 스포츠 확산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선수 출신들이 더 많지 않을까. 물론 나는 앞으로도 야구 예능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예능을 열심히 볼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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