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뚝심 연구, 물의 비밀 풀어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겨울에 물이 모두 얼어붙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기 힘들 것이다. 강의 물은 어는 점에 이르면 위에만 얼고 밑에는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 생명체가 유지된다.
물은 지구에 많이 존재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물질이자 인류가 가장 오래 연구해 온 대상 중 하나이다. 너무나 익숙한 액체인데 과학자들에게는 가장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물질로도 꼽힌다.
일반 액체는 얼기 직전까지 온도가 낮아질수록 무거워진다. 물은 4℃에서 가장 무거워졌다가 그보다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지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이 때문에 겨울에도 강이나 호수의 표면만 얼고 아래쪽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남아 그 속에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백두산 비룡폭포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물은 가장 흔하면서도 과학자에겐 가장 풀기 어려운 성질을 갖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왜 물이 다른 액체와 다르게 이러한 특징을 가지게 됐는지 근본적 이유는 과학계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이 비밀을 국내 연구팀이 풀기 시작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물의 가장 깊은 비밀이 국내 연구팀의 10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 끝에 마침내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배경훈)는 포항공대(POSTECH) 김경환 교수 연구팀이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기존 교과서를 바꿀 만큼 의미있는 발견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물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이라는 두 종류의 액체상으로 공존하며 특정 온도(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구분이 사라진다는 가설이다.
학계에서는 이 임계점이 존재한다면 영하 40℃에서 영하 70℃ 사이의 극저온 영역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은 영하 40℃ 이하로 내려가면 매우 빠르게 얼어버려 누구도 실험을 통해 임계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논쟁으로 이어져 온 배경이다.
국내 연구팀은 영하 70℃에서도 얼지 않은 물을 만들기 위해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내며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레이저(PAL-XFEL)’를 활용했다.
영하 70도까지 얼지 않는 물은 만들었는데 이마저도 10억분의 1g의 극소량과 100만분의 1초 안에 얼어붙는 물이었다.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 X선 자유전자레이저로 관측한 배경이다.
실험 끝에 ‘액체-액체 임계점’이 영하 60℃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물이 두 가지 액체상(고밀도와 저밀도)으로 존재하다가 영하 60도가 되면 그 구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성과는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실험으로 입증한 성과로 꼽힌다. 또 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질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의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연구팀은 2017년에는 영하 45℃까지 얼지 않은 물을 세계 최초로 관측한 바 있다. 2020년에는 영하 70℃까지 관측 범위를 넓혀 사이언스지에 두 차례 성과를 게재한 바 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물의 가장 깊은 비밀이 국내 연구팀의 10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 끝에 드러났다. [사진=포항공대]이후에도 연구팀은 물의 온도와 압력에 따른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하며 끈질기게 연구를 이어온 끝에 임계점 관측에 성공했다.
이번 기초연구 성과는 앞으로 생명 현상과 생체 분자, 기후변화, 물 속 화학 반응 연구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경환 교수는 “물의 특별한 성질과 ‘액체-액체 임계점’을 둘러싼 오랜 세월 동안의 학계 논쟁이 마침내 매듭지어지게 됐다”며 “이번 발견은 생명 현상을 비롯해 다양한 자연 현상에서 물이 갖는 필수적 역할을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김경환 교수는 2019년부터 과기정통부 우수신진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물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입증해 온 연구자”라며 “앞으로도 신진연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에 몰입해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성과(논문명 : Experimental evidence of a liquid-liquid critical point in supercooled water)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27일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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