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넥슨의 자회사 네오플에서 국내 게임업계 최초의 파업이 시작됐다.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카카오모빌리티와 네이버 등도 집회를 열거나 파업을 단행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던 판교 IT 노조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IT 노조들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협상력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넥슨지회 네오플분회는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네오플분회는 사측의 대화 거부와 파업 중단 압박을 규탄하면서 넥슨도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했다.
갈등의 쟁점은 성과급 지급 수준이다. 네오플분회는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4%를 전체 노동자에게 균등하게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네오플 사측은 던파모바일의 중국 출시가 지연됐던 상황에서 이미 인센티브(GI)가 지급됐다는 입장이다.
네오플분회는 중국 출시 지연을 이유로 직원들의 성과급은 줄이면서 경영진엔 오히려 10배에 달하는 보상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즉, 정당한 보상을 위해서라도 이익분배금(PS제) 4% 지급이 제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내년 6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서 GI를 추가 지급할 예정이다. GI뿐만 아니라 조직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인센티브 제도(KI)를 운영해 회사와 개인의 성과에 비례한 보상을 제공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인센티브 3300만원이 회사가 정한 3단계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만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마지막 단계인 '중국 던파 매출 2배' 조건은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실제 지난 3년 동안 해당 인센티브를 받은 사례는 단 한 번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영업이익의 몇 %를 성과급으로 책정할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영업이익의 몇 %가 적당한지에 대한 불문율이 없다. 서로가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노사가 합리적인 선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네오플분회의 이번 파업은 게임업계의 초유의 노사 갈등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최초 파업인 동시에 강도도 심화되고 있어서다. 네오플분회는 지난 5월 29일 임금 교섭이 결렬된 이후 지난 7일부터 전면 파업을 개시했다. 다음 달 8일까지 한달간 지속될 예정이다. 국내 게임사 웹젠 노조는 2022년 임금 교섭 당시 파업을 예고했지만 사측과의 집중 교섭 끝에 합의하면서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처럼 IT 업계 노조들 사이에서 이전과 달리 비교적 강경한 투쟁 기조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엔 카카오·네이버 노조가 집회를 열었다.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는 사측이 높은 실적에도 일방적으로 낮은 수준의 보상안을 지급했다면서 파업을 예고했다. 카카오지회 설립 후 첫 파업 예고였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복귀를 비판하면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IT 업계 노조 간의 결속력도 강해지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이들 노조 간 연대 채널 중 하나다. 카카오지회는 지난 11일 열린 네이버지회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네이버지회는 지난 3월 카카오의 포털인 다음 분사에 반대하는 집회에 함께했다.
업계에선 IT 노조들 설립이 확산하던 형성기를 거쳐 적응기를 지나 점차 내실을 다지면서 협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에도 IT 업계 노조가 없진 않았지만 2018년 네이버지회가 설립되면서 '노조 불모지'로 불리던 IT 업계에 노조 깃발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노조 입장에서는 협상력을 높이는 방법은 파업"이라며 "IT 업계에서 불규칙한 노동 이나 적절하지 않은 인사관리 등 노동 환경 문제가 있어 왔다. 그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얹혀왔던 문제들이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