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옥의 파장[이준식의 한시 한 수]〈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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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그대여! 침상엔 골풀 방석이 깔리고 쟁반엔 생선이 있구려.
북쪽에는 착한 형이 살고 동쪽엔 어린 여동생이 살고 있소.
밭에는 푸릇푸릇한 기장과 마늘, 술단지엔 거품이 동동 뜨는 탁주.
기장 먹을 수 있고 탁주 마실 수 있으니 그대여, 그대여, 살만하지 않은가요.
머리 풀고 강물로 내달리면 결국 어떻게 되겠소? 착한 형과 어린 여동생이 구슬피 울겠지요.
(公乎公乎, 提壺將焉如. 屈平沉湘不足慕, 徐衍入海誠爲愚. 公乎公乎, 床有菅席盤有魚. 北里有賢兄, 東隣有小姑.
隴畝油油黍與葫, 瓦甒濁醪蟻浮浮. 黍可食, 醪可飮. 公乎公乎其奈居. 被髮奔流竟何如. 賢兄小姑哭嗚嗚.)

―‘공후의 노래(공후인·箜篌引)’ 이하(李贺·790∼816)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시작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고조선의 나루지기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불렀다는데, 이 짤막한 노래를 모티프로 중국 시인들이 살과 뼈를 붙인 노래가 수십 편에 이른다. 여옥의 파장이 실로 길고 깊었다.

시는 원시에 상상을 보탠다. 굴원이나 서연처럼 이 시의 주인공 역시 세상의 혼탁을 비관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버린단 말인가. 파장은 이백에게도 흘렀다. ‘과연 노인은 익사하여 바다로 표류해 갔지. 큰 고래 흰 이빨이 설산처럼 높았으니 노인이 그만 그 사이에 걸려들었지.’(‘공무도하’) 모두가 죽음의 문제를 다룬 주술 같은 화두를 이백은 보다 현실적인 비극미로 형상화했다.

그대여, 그대여! 술병 들고 어디로 가려 하오?

상강에 빠져 죽은 초나라 굴원(屈原)은 동경할 필요 없고, 돌 지고 바다로 들어간 주나라 서연(徐衍)은 정말 어리석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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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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