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맞선 모범생 연시은 역…"어릴 적 제 모습과 닮은 캐릭터"
아이돌 이미지 벗고 연기 호평…"배우로서 인정받기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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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조용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배우 박지훈이 인터뷰에 앞서 볼펜을 집어 들더니 '딸깍' 소리를 냈다.
순간 드라마에서 그가 볼펜을 쥐고 휘두르던 전매특허 액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대신 박지훈은 아주 느린 속도로 테이블 위에 놓인 A4 용지에 조그마한 글씨로 '약한영웅'이라고 적었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약한영웅 클래스2' 공개를 기념해 2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지훈은 극 중 배역인 연시은처럼, 모범생 같은 태도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요약해서 종이에 받아적었고, 곰곰이 생각한 뒤에야 조곤조곤한 말투로 답변했다.
박지훈은 "왠지 모르게 연시은은 유난히 더 애착이 가고, 친근하고, 안쓰럽게 바라보게 되는 캐릭터였다"며 "시은이의 얘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클래스2를 찍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시은이가 결국 친한 친구들과 함께 웃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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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영웅'은 학생들이 마주한 폭력을 전면에 내세운 학원물이다.
시즌1은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 연시은이 주변의 괴롭힘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과정을, 시즌2는 친구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새로운 고등학교로 전학 간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박지훈은 "시즌2에서 더 집중적으로 표현해내고 싶었던 것은 악에 받친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폭력으로 친구를 잃은 뒤 시은이에게는 새롭게 쌓인 감정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시즌2에서 액션의 규모가 훨씬 커졌는데, 싸우는 장면에서 '제발 이 지겨운 짓 좀 그만하자'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은이는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친구거든요. 액션의 쾌감이 덜 해서 아쉽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시은이와 친구들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시은이가 왜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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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도 적고,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시은은 표현의 폭이 제한돼 있지만, 박지훈은 무표정 속 슬픔, 분노, 외로움, 좌절 등 복합적인 감정을 소화해내며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특유의 공허한 눈빛 연기와 미세한 얼굴 근육 떨림을 활용한 감정 연기가 호평받았다.
박지훈은 "화가 나서 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느낌을 연시은을 연기하면서 처음 느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볼이 떨리는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저도 제가 정말 깊게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저도 놀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시은이에겐 신기하게 바로바로 몰입됐던 것 같아요. '클래스2' 첫 리딩을 할 때도 감독님이 '어떻게 저렇게 바로 시은이가 나오지?'라고 하셨는데, 현장에서도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공 차고, 웃고, 장난치다가 슛만 들어가면 바로 몰입이 됐거든요. 감독님도 신기하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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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연시은에 쉽게 몰입이 된 이유는 과거 자기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역 배우로 생활하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뿐이었고, 또래 친구가 많이 없었다"며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시은이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다. 어릴 때 제가 느낀 감정을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은이의 쓸쓸한 뒷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은이를 연기하며 위로받는 순간도 많았어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웃을락 말락 하게 웃는 장면이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 웃어야 하나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시은이가 웃었네' 싶은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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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출신인 박지훈은 여러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엠넷 예능 '프로듀스 101'에서였다. '내 마음속에 저장'이란 유행어로 단숨에 인지도를 쌓았고, 그룹 워너원으로 데뷔해 귀여운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약한영웅' 시리즈로 기존의 꽃미남 아이돌 이미지를 깨고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한 박지훈은 "아직 배우로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작품에서 제가 가진 모습을 표현해내고 싶은 갈망이 남아있다"며 "그래야 저도 저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큰 목표를 세워두지는 않았어요. 인생은 끝이 없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계속 묵묵히 뛰어가다가, 때로는 걸어가자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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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p@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28일 14시47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