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로 만든 K팝, 빌보드 차드 석권...BTS와 어깨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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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주름잡는 3인조 걸그룹 ‘헌트리스’, 공연을 앞두고 이들이 먹는 건 라면과 김밥이다. 컨디션이 나쁠 땐 한의원에서 한약을 받는다. 악령 퇴치를 겸하는 이들은 한옥 지붕, 남산 서울타워, 낙산공원 성곽길을 누빈다. 신예 보이그룹인 ‘사자보이즈’를 부를 땐 한국어로 ‘후배’라고 한다. 넷플릭스 영화 인기 차트에서 8일 미국 시장 기준 1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속 줄거리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걸그룹 '헌트리스'. / 사진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걸그룹 '헌트리스'. / 사진출처. 넷플릭스

헌트리스가 후배 보이그룹과 함께 세계 음악 시장을 휩쓸었다. 이들의 노래를 담은 K팝 데몬 헌터스가 ‘빌보드 핫 100’에 7곡이나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고 권위로 꼽히는 이 음원 차트에 7곡이 동시에 들어갔던 K팝 아티스트는 2020년 방탄소년단(BTS) 이후 처음이다. 음원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인 스포티파이에서도 이 애니메이션에 쓰인 K팝이 1위(미국 기준)에 올랐다. 국내 대형 기획사의 일부 그룹에 국한됐던 K팝의 세계 시장 저변이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K팝 애니 인기몰이, 이제 시작

8일(현지시간) 빌보드는 오는 12일을 기준으로 하는 주간 음원 차트인 ‘핫100’을 공개했다. 이 차트엔 '골든'(23위), '유어 아이돌'(31위), '하우 잇츠 던'(42위) 등 ‘K팝 데몬 헌터스’ 7곡이 진입했다. 핫100은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횟수뿐 아니라 미국 라디오 방송 횟수도 반영해 미국 음악 시장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표로 첫손에 꼽힌다. 이 차트에 K팝 7곡이 동시에 들어간 건 2020년 12월 BTS 이후 처음이다. 공연기획사의 홍보가 없어 라디오 방송이 어려운 OST 앨범으로선 이례적인 성과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 사진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 사진출처. 넷플릭스

다른 차트를 보면 더 압도적이다. 앨범 판매량을 집계하는 주간 차트인 ‘빌보드 200’에선 3위를 기록했다. 스포티파이에선 7일 미국 시장 기준 '유어 아이돌'이 1위, '골든'이 2위에 올랐다. '유어 아이돌'은 사자보이즈가, '골든'은 헌트리스가 부른 노래다. 스포티파이의 세계 음원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은 2023년 기준 35%에 달한다. 주목할 건 상승세다. 음원 차트 예측 사이트인 토크오브더차트는 '골든'이 다음 주 핫100에서 9계단 오른 14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K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달 2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99분 길이 애니메이션이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매기 강이 유년 시절 봤던 K팝 가수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대립하는 구도를 그려냈다. 작품에선 한국문화 요소가 없는 장면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돌이 한복을 입고 있을 뿐 아니라 민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한다. 주인공이자 헌트리스의 메인 보컬인 루미가 부르는 노래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활동을 했던 작곡가 김은재가 맡았다. 연예기획사 더블랙레이블의 총괄 프로듀서인 테디, 실제 아이돌 그룹인 트와이스도 참여해 작곡 완성도를 높였다. 배우 안효섭, 이병헌도 목소리 열연으로 힘을 보탰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서 곡 '골든'을 노래한 작곡가 김은재. / 사진출처. AFP연합뉴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서 곡 '골든'을 노래한 작곡가 김은재. / 사진출처. AFP연합뉴스

K팝 2라운드...해외 자본이 먼저 찾는다

눈여겨 볼 부분은 콘텐츠 이면의 제작 구도다. 통상 K팝 콘텐츠는 국내 대형 기획사가 판을 짜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진출의 위험성을 떠안는 것도 투자를 감행하는 이들 업체의 몫이었다. 반면 'K팝 데몬 헌터스'는 소니의 증손회사인 소니픽쳐스애니메이션이 만들었다. 일본 자본을 둔 미국 헐리우드 기업이다. 이 업체가 K팝 소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건 2021년. BTS가 빌보드를 수놓았을 때다. “해외 시장이 먼저 돈이 될 만한 K팝 콘텐츠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음원 업계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속 걸그룹인 '헌트리스'. / 사진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속 걸그룹인 '헌트리스'. / 사진출처. 넷플릭스

해외 업체가 가담한 K팝 콘텐츠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국 스튜디오인 이매지네리엄프로덕션은 국내 업체와 함께 K팝을 소재로 한 첩보 영화를 만들고 있다. CJ ENM도 애플TV의 제안을 받아 K팝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하이브가 해외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걸그룹인 캣츠아이도 미국 음반 레이블인 게펜 레코드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K팝 콘텐츠가 국내 기업 주도로 제작되는 국면은 이미 끝났다“며 “K팝 팬층이 세계적으로 두터워지면서 헐리우드에서도 한국 문화를 최신 트렌드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빌보드 추이를 보면 K팝의 시장 안착이 뚜렷하다. 2021년 빌보드 핫100에 진입했던 K팝 곡은 BTS 5곡, 블랙핑크 3곡, 트와이스 1곡 등 9곡에 불과했다. BTS와 블랙핑크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K팝 아티스트를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엔 르세라핌, 아일릿, 스트레이키즈 등이 활약하면서 이 차트에 든 K팝이 18곡으로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가 막 지난 시점에서 벌써 21곡이 진입했다. 중소 기획사인 KQ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보이그룹인 에이티즈가 지난달 28일 빌보드 200에서 2위에 오르는 등 아티스트 면모도 다양해졌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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