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표적인 무상재였던 ‘공기’… 현재 공기청정-냉방에 요금 지불
에어컨 사용 전 필터 청소도 필수… 美 돔구장에선 냉방 후 남은 냉기
인근 30여 개 건물로 순환 공급… ‘시원한 공기’ 자산으로 활용하기도
에어컨 청소 전문가는 요즘 ‘에어컨 닥터’라는 말로도 불립니다. 집안 공기를 회복시키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보면 오래전 읽은 소설 속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 사소하지 않은 ‘숨결을 위한 노동’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고아인 올리버를 ‘굴뚝 청소부’에게 보내려는 장면이 나와요. 굴뚝 청소부는 19세기 산업혁명기 빈곤과 아동 노동 착취를 상징하는 직업이었죠.당시 유럽에서는 좁은 굴뚝 내부를 청소하기 위해 몸집이 작은 7∼10세 사이 아이들을 고용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몸집이 작고 민첩하다는 이유로 채용되었지만, 이 아이들은 보호 장비 하나 없이 그을음과 유독가스 속에서 작업했습니다. 숨 쉬기도 힘든 공간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폐 질환을 얻기도 했죠. 굴뚝 청소부는 도시의 공기를 정화했지만 정작 자신의 폐와 몸은 서서히 병들어 갔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는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현실 속 굴뚝은 심각한 아동 노동 착취의 현장이었던 겁니다. 영국에서는 1864년에야 아동 굴뚝 청소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가정에서 굴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거실 에어컨과 천장 위 덕트를 청소하죠. 에어컨의 내부는 냉각팬, 열교환기, 각종 필터 등 복잡한 기계 장치들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일일이 손으로 분해하고 고압의 스팀으로 찌든 먼지와 곰팡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세균을 걷어내는 작업은 이제 로봇도 인공지능(AI)도 대신하기 어려운 숙련된 기술 전문가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 ‘유상재’가 되어 버린 공기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공기를 대표적인 무상재(無償財·free good)로 소개합니다. 누구에게나 무한히 존재하며,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공기를 그냥 누릴 수 없어요. 미세먼지와 오존, 실내 곰팡이까지… 맑고 시원한 공기는 이제 점점 유상재(有償財 또는 경제재·economic good)가 되고 있어요.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는 공기청정기를 사고, 필터를 교체하고, 환기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시원한 공기를 얻으려면 에어컨을 사고, 전기요금을 지불하고, 정기적인 청소와 점검에 공들여야 해요. 숨 쉬기 위한 비용이 이제는 숫자로 계산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는 세계 최초의 냉방시설을 갖춘 야구 돔구장 체이스 필드가 있어요. 기온이 45도에 이르는 사막 한복판에서 관중 수만 명이 시원하게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이유는 거대한 냉각 시스템 덕분이죠.
그런데 이 시스템은 단지 구장 내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장에서 만들어진 차가운 공기는 냉각 후 남은 잉여 냉기와 함께 도심 속 30여 개 건물로도 순환 공급되고 있어요. 돔구장의 시원한 공기를 그냥 대기로 흘려보내지 않고 도시 인근 건물의 냉방 자원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거죠.
이 시스템은 냉수 기반의 지역 냉방(District Cooling) 개념을 응용한 것입니다. 한 번 생산된 시원한 공기가 개별 공간을 넘어 공유되는 냉방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어요. 이는 시원한 공기가 하나의 ‘순환 자산’처럼 다뤄지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죠. ‘공기를 공유하는 도시 인프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숨 쉬는 데도 돈이 드는 시대, 공기를 다루는 기술 가치는 높아지고 있어요.‘굴뚝 청소부’에서 ‘에어컨 닥터’까지 공기와 함께 진화한 노동의 가치 뒤에 숨은 경제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 야외 노동자의 사망 사고 뉴스까지 접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냉방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 대책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다들 건강히 무더위를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이철욱 방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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