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확실성의 덫 탈출하려면

1 month ago 13

[시론] 불확실성의 덫 탈출하려면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자본시장에는 오랜만에 강한 기대감이 형성됐다. 대통령 취임 첫날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2.66% 급등하며 2770.84로 마감했고 이후 3000선을 돌파하며 ‘코스피지수 4000 시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확산했다. 그러나 이런 지수 회복에도 시장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짙다.

코스피지수 4000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전통적 가치평가 모형에 따르면 기업의 가치는 미래 현금흐름과 위험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 속에 불확실성의 시대에 들어섰다.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 처한 상황이 바로 이 불확실성의 덫이다.

무엇보다 대외 불확실성이 시장을 옥죄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약탈적 통상 압박이 있다. 지난달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대규모 단속을 벌여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집단으로 체포·구금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에는 한·미 협력의 성공 사례라며 치켜세운 사업이 하루아침에 정반대 상황으로 뒤바뀐 것이다.

‘반전무상(反轉無常)’의 현실을 보여준 사건으로 대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극도로 키웠다. 여기에 더해 같은 달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하 조건으로 3500억달러를 선불로 요구했다. 이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8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실제 출연 시 외환위기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미국의 이런 약탈적 통상 압박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며, 국익에 부합하고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태도는 정부가 직접적인 충돌이나 즉각적 결정을 내리기보다 시간을 벌며 대응하는 지연전략(delay strategy)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리얼옵션(real option) 접근과 비슷하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선택지를 열어두는 전략은 타당하지만, 문제는 무한정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피해가 현실화했다. 지난 8월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협의 중이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협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면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가 대미 협상 전략을 기업들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들이 정부 전략의 방향과 속도에 맞춰 대응을 준비할 수 있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힘은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조직이론이 강조하듯 정보 공유와 신뢰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대미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라도 국내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은 최소화해야 한다. 최근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사용자성 판단 기준, 쟁의행위 범위 등 시행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법률 시행 과정에서 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투명한 소통을 통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지금으로서는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입법이나 제도 개편은 속도 조절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결국 미국이 약탈적인 통상 압박을 스스로 멈추지 않는 한, 코스피지수 4000 시대를 향한 길은 국내에서라도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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