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전공 선택 제도는 지난 20여 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2000년대 초반 정부는 학생에게 더 넓은 선택권을 주고, 학문 간 융합을 촉진하겠다며 광역모집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큰 계열 단위로 입학해 기초 과목을 수강한 뒤 전공을 정할 수 있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인기 학과 쏠림과 학과 간 갈등이 격해지면서 제도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고 결국 2008년 무렵 폐지됐다. 이후 대부분 대학은 입학 단계에서 전공을 지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교육부가 급격한 산업 변화와 인재 수요 다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자율전공(무전공 입학)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과 주요 국립대에서 전공자율선택 모집 비율은 2024학년도 6.6%에서 2025학년도 28.6%로 급상승했다.
자율전공제 확대는 학생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필자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진과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공 탐색 기회를 가진 학생은 변화에 더 잘 적응하며 졸업 후 임금도 유의미하게 높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형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입학과 동시에 전공을 확정하는 방식은 불확실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추진 과정이 또다시 정부 주도의 강한 압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광역모집을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했다가 실패한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준비 없이 양적 확대만 이뤄진다면 특정 전공 쏠림, 기초학력 부족, 행정 부담 등으로 제도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과 간 갈등이 격해지고, 특히 기초학문과 인문학 분야는 존립의 위기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제도의 목표와 효과에 관한 철학적·실증적 검토가 필요하다. 자율전공이 단순히 ‘입시용 지표’가 아니라 학생들의 적성과 사회적 수요를 조화시키는 제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장기적 효과를 연구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 입학 단계부터 졸업 후 취업 성과까지 추적하는 패널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가령 이 데이터를 통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 동기, 중도 이탈 원인, 졸업 후 진로 만족도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면 제도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학생 지원을 최적화하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학생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1학년 동안 전공에 속하지 않은 학생들이 기초학력을 쌓을 수 있도록 교양교육을 체계화하고, 계열별 기초 과목과 보충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진로 상담과 학업 멘토링을 확대해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적성을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학과 간 협력과 자원 재배분이 중요하다. 인기 학과 쏠림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완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학과 간 공동 프로그램, 복수전공 및 융합전공 활성화 등을 통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동시에 기초학문 분야가 약해지지 않도록 별도의 재정 지원과 인센티브도 마련해야 한다.
자율전공 확대는 한국 고등교육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유도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과거 광역모집이 실패한 것은 ‘제도의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준비와 실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준비와 지원 속에 대학과 정부가 함께 제도를 설계할 때 자율전공은 학생에게는 탐색의 자유를, 사회에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안겨줄 것이다.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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