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LNG 수급 전략 재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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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LNG 수급 전략 재정비해야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비톨…. 이런 기업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기업들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국제 무역에 상당한 지식이 있거나 관련 종사자이거나 투자의 귀재일 가능성이 높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를 거치며 20여 년간 원자재 저널리스트로 활약해 온 하비에르 블라스가 쓴 <얼굴 없는 중개자들(The World For Sale)>이라는 책의 소재는 자본주의가 낳은 탐욕의 상징이자 원자재 거래를 통해 수천억달러를 벌어들이는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딩 회사다. 이들은 매년 엄청난 부를 벌어들여 칭송받지만 한편으로는 공급망 불안과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그리고 배터리는 한국 기업이 만들지만 그 내부에 들어가는 광물, 소재, 부품 등은 모두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딩 회사 손을 거친 수입품이다. 세계 3대 원자재 중개 업체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부터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배터리 원소재까지 안 다루는 물건이 없으며 그들을 통하면 못 구할 물건도 없다. 불법과 합법을 줄타기하면서 가격과 물량을 가지고 전 세계를 농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전쟁을 이용하는 것도 불사한다.

우크라이나가 실질적 전쟁터지만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EU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사주며 사실상 러시아에도 전비를 대는 모순적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이라는 국적 불명의 선박들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덤핑으로 팔기 때문에 국제적 암거래는 기승을 부린다. 국제 무역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터이자 돈을 위해 목숨까지 거래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때,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대한민국이 무역으로 생존하기 위해 어떤 미래 전략을 짜야 하는지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우리는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국가다. 전기가 부족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병원의 산소호흡기를 못 쓰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에너지 전략을 짜야 한다. 최근에 발생한 스페인 대정전은 어떠한 경제적 비용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역력히 보여줬다. 아직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의 주파수가 탈락하는 과정에서 관성을 제공할 전원이 부족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기는 주파수 안정도와 전압 안정도를 기본으로 확보해야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한다고 재생에너지 발전소만 늘리고 송전선은 없고 관성을 제공해줄 발전원이 줄어든다면 안정적으로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스페인과 동일한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관성을 공급하는 대표적 발전원이 바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다. 관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부하 추종도 가능하기 때문에 LNG 발전소가 꼭 필요하다.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에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치열한 머리싸움과 천문학적 돈이 오가는 냉혹한 협상장에서 원자재 거래 기업과 협상을 잘해야만 좋은 가격으로 LNG를 공급받을 수 있다. 충분한 구매 물량을 가지고 있어야 유리한 가격 협상이 가능하고, 급박한 공급망 불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 자산을 통해 우호적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국제 에너지 전쟁에서 LNG를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국익을 위한 포트폴리오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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