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희 ‘가변 크기’ 중
좋은 시는 독자의 ‘생각’을 널뛰게 만든다. 시집을 읽는 독자의 머리는 도대체 쉴 틈이 없다. 독자는 앉은 채로도 몇 세기 전의 불행에 참여하고 있거나 몇 세기 후의 위기를 가늠해 보는 중이다. 벤치는 대양과 대륙을 오가는 상상력을 전혀 붙잡아 둘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시는 실제로 독자의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일어선 그는 곧 벤치에서 벗어나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좋은 시란 타자의 고통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에 독자는 타인의 처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과 생각이 들떠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이제 외로운 가족과 아픈 이웃에게 손을 내밀러 떠나야 한다. 벤치에 앉아 시를 읽는 시간은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시집을 들고 매일 편한 벤치만 찾는 독자는 어쩌면 시와 가장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상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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