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때 상종가 외국어, 해외여행 자유화로 타격
AI로 어학교육 무용론 확산, 통번역사 수요도 급감
AI, 언어 속 의미 전달 한계…어학+공학 융합이 활로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89년 1월1일, 전 국민이 자유롭게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도 경제성장과 88서울올림픽이 일으킨 도도한 세계화 흐름에 맞춰 정부가 해외여행 규제를 해제한 것이었다. 그 전만 해도 해외여행은 50세 이상 부자에게만 허락됐다. 은행에 거액의 보증금을 넣고 안기부(국정원 전신)에 가서 반공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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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테크 코리아 2024에서 관람객이 AI 동시 통역을 체험하고 있다. 2024.6.19 yatoya@yna.co.kr
그 시절, 외국어는 수출 한국의 무기이자 청년에게 기회의 문이기도 했다. 영어, 불어, 독어, 이른바 '영불독'은 공공기관과 대기업으로 가는 취업의 보증수표였기에 법대와 상과대 못지않게 잘 나갔다. 1990년대 초반엔 수출이 공산권으로 확장하면서 당시만 해도 비인기 소수어였던 중국어와 러시아어, 동남아어의 수요도 커졌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그들을 만들어낸 컴퓨터 전공자들을 해고의 칼바람 속으로 몰아넣듯, 세계화는 그들의 견인차였던 외국어 전공자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기회의 땅 한국으로 중국 동포와 개도국 국민들이 몰려들면서 몸값이 떨어진 소수어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불어와 독어는 고교생들의 외면으로 제2외국어의 지위를 잃어 전공자들의 교단 진출로가 끊어졌다. 최근엔 주요 국립대마저 불어, 독어, 중국어 교육과를 통합, 폐지하거나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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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자 1989년 2월 일본대사관 앞에 평소보다 갑절이 많은 사람이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AI 때문에 외국어 교육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AI가 실시간 통·번역을 해주니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 과거 대표적인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통번역사가 AI 대체 1순위 직종으로 분류됐다고 한다.
외국어 전공자들의 장래는 어둡기만 할까? 답은 그들과 대학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단순한 통번역 능력 쌓기 대신 언어와 공학을 결합하는 융합 학문으로 나아간다면 AI 시대에 오히려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계가 말과 문장을 바꿔 표시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음성과 문장에 담긴 울림은 전달할 수 없다. 어느 말이든 그 속에는 문학과 예술,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의 마음, 사람 사이에 감정과 표현을 잇는 다리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로 인문학이 다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인문의 기초를 이루는 어학의 미래는 그래서 더욱 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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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홈페이지 캡처]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29일 06시59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