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왕사남' 엄흥도의 대의, '사람'에 충성한 윤석열

1 hour ago 1

엄흥도 단종 시신 암장 후 은둔, 훗날 충절의 표상으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재조명, 세조에 비난 쇄도

尹, 관객 400만 돌파날 무기징역…측근들 손절 행렬

"대의에 충성한 자만이 결국은 승자" 진리 일깨워

이미지 확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457년, 조선의 대지는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세조의 친동생 금성대군이 순흥(경북 영주)에서 시도한 단종 복위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자, 서슬 퍼런 칼날은 결국 영월에 유배된 단종을 겨눴다.

《세조실록》은 단종이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의 사형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禮)로써 장사 지냈다"고 기록했다. 신숙주와 정인지 등 계유정난 공신들이 단종을 죽이라고 주청하던 차에, 단종이 비관해 자결했다는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 비겁한 기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훗날 《숙종실록》은 사약을 들고 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자 "왕을 모시던 유생 하나가 자청해 '차마 못 할 일'을 저질렀고, 왕은 즉시 아홉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고 적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한 통인(수령 심부름꾼)이 활줄에 노끈을 이어 창구멍으로 단종의 목을 감아 잡아당겼다"고 전했다.

단종의 시신이 차디찬 초겨울 동강에 버려져 둥둥 떠다닐 때 아전 엄흥도가 나타났다. 주변에서 멸문지화를 우려하며 만류하자 그는 "위선피화(爲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착한 일을 하다 화를 입는다면 달게 받겠다"고 외치고 침묵과 어둠 속에서 나아갔다.

이미지 확대 '봄에는 단종의 장릉에 가보자'

'봄에는 단종의 장릉에 가보자'

(영월=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엄흥도가 몰래 단종 시신을 묻은 곳, 영월 장릉 능침. 2025.9.2 srbaek@yna.co.kr

야사에 따르면 아들들과 함께 동강에서 시신을 건져 올린 그는 자신의 노모를 위해 준비해둔 관에 옥체를 모시고 눈보라 속에서 매장지를 찾았다. 한참을 헤매다 노루 한 마리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만 눈이 녹아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단종을 묻었다. 오늘날의 '장릉(莊陵)'이다.

거사를 마친 엄흥도는 단종의 어의를 품고 계룡산 동학사로 가 생육신 김시습과 함께 제사를 지낸 뒤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종적을 감췄다. 그는 단종이 죽임을 당한 지 212년만인 현종 9년(1669년) 복권되며 사육신에 버금가는 충절의 표상으로 부활했다. 경북 문경과 울산 등지에 흩어져 살던 후손들은 연좌에서 풀려나 관직에 오를 수 있었고, 엄흥도는 이후 공조참판으로 추증되고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도 하사받았다.

엄흥도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다시금 화려하게 조명을 받고 있다. 영화관에 관객이 몰리는 가운데 단종의 유배지로 '육지 속 섬'으로 불리는 청령포 방문객은 지난해보다 5배나 급증했다. 반면, 세조가 묻힌 남양주의 광릉은 지도 앱에서 '별점 테러'와 비난 섞인 댓글로 몸살을 앓다 접속이 차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지 확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했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했지만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있다.[서울중앙지법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교롭게도 영화가 누적관객 400만을 돌파하던 날, 엄흥도처럼 대의를 외쳤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수괴죄로 1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충성의 과녁은 국민이 기대한 공정과 상식이 아니었다. 정작 본인과 가족, 사적 인연이라는 '그만의 사람'에게만 편향됐다.

엄흥도와 윤석열의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준엄한 진리를 던진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대의를 따른 자만이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역사의 승자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에 기대어 권력을 누린 이들까지 '절윤'을 외치며 보스를 등지고 있다. 엄흥도의 외침이 오늘날 더욱 뼈아프게 와닿는 이유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0일 10시12분 송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