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감동없는 프로야구 병특, '양정모 시대' 이대로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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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병특 도입, 예술 정명훈ㆍ체육 양정모 첫 수혜박정희, 양정모 코치 건의에 곧바로 한국체대 설립스포츠, 생존수단에서 전문직화, 공정성 시비 커져한일전 승리 환호에 여론 냉담…실질적 대체복무 강구를 이미지 확대 '금메달이 이렇게 좋을수가' (영종도=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일본 사회인 야구팀을 꺾고 우승한 한국팀 노시환(앞줄 왼쪽부터)과 곽빈, 김도영 등 선수들이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2026.9.28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76년 8월 1일 아침,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금메달을 땄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이틀 뒤 귀국한 양정모는 말 그대로 개선장군이었다. 양정모를 태운 무개차가 김포공항을 출발해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를 건너 서울시청으로 향하는 길에는 100만 인파가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양정모의 금메달 하나는 국가의 체육정책까지 바꿔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양정모와 정동구 코치를 청와대로 불러 "어떻게 하면 우리도 금메달을 많이 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 코치는 동독을 예로 들며 엘리트 선수를 전문적으로 육성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듬해 3월 공릉동 경기공업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 건물을 빌려 한국체육대학이 문을 열었다.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특례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남북 간 체제경쟁이 극에 달했던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북한에 밀리자, 정부는 이듬해 병역특례 제도를 만들어 예술·체능 특기자가 보충역으로 병역을 대신할 길을 열었다. 예술계에서는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오른 정명훈이, 체육계에서는 양정모가 1호 수혜자가 됐다. 당시 정명훈은 미국 국적으로 콩쿠르에 참가했는데도 정부는 귀국 카퍼레이드까지 열어줄 만큼 '국가 자긍심' 고취에 열을 올렸다. 이미지 확대 '개선장군' 레슬링 양정모 카퍼레이드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한국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딴 양정모가 김포공항에서 내려 카퍼레이드에 나선 모습. 1976년 8월 3일. [국가기록원 제공]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후진국을 막 벗어나던 시절의 빛나는 유산은 선진국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특혜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 한일전 논란은 달라진 시대와 국민의 눈높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십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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