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못하는 췌장암, 3000V 전기 치료로 생존기간 연장

수술하기 힘든 췌장암 환자에게 3000v의 전기를 흘리는 비가역적 전기천공(IRE) 치료를 했더니 생존 기간이 크게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브란스병원은 김만득·권준호 영상의학과 교수팀이 수술이 힘든 췌장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IRE 치료한 결과를 오는 30일 미국 내슈빌에서 열리는 인터벤션영상의학회에서 발표한다고 11일 밝혔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5.9%에 불과하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췌장암은 전체 환자의 20% 정도다. 대부분 수술조차 힘든 상태에서 진단받는다.

주변 혈관이나 다른 장기까지 암이 번진 국소 진행성 췌장암은 항암 치료를 받아도 평균 생존기간이 진단 후 6~11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한 치료 중 하나가 IRE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치료법은 국내에선 2016년 세브란스병원이 처음 도입했다. 최근 신의료기술로도 인정 받았다.

IRE는 암 조직 주변에 3~6개 전극을 삽입한 뒤 고압의 전기를 흘려 암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가정용 콘센트 전압(220V)의 10배 이상인 3000V의 전기를 사용한다.

IRE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혈관이나 조직 손상이 거의 없다. 고압의 전기를 흘리면 암 세포 막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크기 구멍이 여러 개 생기고 이 구멍이 세포 내외부 균형을 무너뜨려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암 세포가 사멸할 땐 미세한 구멍으로 암 세포 물질이 노출된다. 인체 면역계를 이를 적군으로 인식해 암을 공격하게 된다. 암 세포의 면역 회피 기능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팀이 수술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 13명에게 IRE 치료를 시행한 결과 환자의 시술 후 평균 생존 기간은 평균 20.7개월 이었다. 기존 IRE 시술을 했을 때 보고된 11~14개월보다 9개월 이상 늘었다.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은 43.9개월로 기존 치료법(17~27개월)보다 26개월 이상 늘었다. 생존 기간 연장이 어려운 췌장암 분야에선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다.

연구진은 환자 치료에 국내 의료기기업체 더스탠다드에서 개발한 EPO 시스템을 활용했다. 김 교수는 직접 장비 개발에도 참여해 기존 IRE 장비보다 시술 효과는 높이고 시술에 드는 시간은 50% 이상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술을 위해 배를 열지 않아도 돼 1주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거나 크기가 너무 큰 경우 IRE 치료적응증이 되지 않거나 효과가 떨어진다"며 "환자 수가 많지 않아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치료 효과가 떨어지거나 항암제 부작용으로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