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 시, Truth Social에 떠오른 PDF ' WHITE HOUSE, July 7 2025'는 적잖은 한국 기업인에게 졸음이 아닌 전율을 선물했다. '8월 1일부로 한국산 전 품목에 25 % 관세를 부과한다. 무역 적자는 국가 안보 위협이다.' 숫자는 하나(25 %), 단어는 둘(Balanced Trade, National Security)뿐이었으나, 이를 통해 기업은 단순 세율을 넘어 두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 관세가 더 이상 '가격 싸움'이 아니라 질서 선택의 기준이 됐다는 점. 둘째, 편을 고르지 못하면 비용이 자동 결제된다는 점.
우리는 지난 30 년을 '경제가 정치보다 똑똑하다'는 주문으로 살아왔다. 생산지는 가장 싸고,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올리면 국경이 사라지고, 달러는 모두에게 중립이라는 세 가지 전제에서다. 팬데믹이 컨테이너를 멈춰 세우더니, 우크라이나 전쟁은 달러 결제망을 무기로 바꾸었고, 대규모 해킹은 서버에도 국적을 새겼다. 국경을 넘던 자본이 남긴 빈틈에 '안보 비용'이 끼어들기 시작한 순간들이었다.
이번 서한은 관세를 두 개의 문구로 묶었다. '균형 무역'과 '국가 안보'. 해석은 단순하다. 미국 질서 안에 머물려면 세율 대신 공장·데이터·세금까지 미국식 규칙을 따르라는 초대장이다. 선택지가 아니라 시험지에 가깝다. 이미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 고객 계약 주체를 싱가포르나 텍사스 법인으로 옮겨 관세를 우회할 준비를 마쳤다. 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편을 증명하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관세 통보가 떨어진 뒤 기업 앞에는 세 갈래 길만 남는다. 첫째, 동화(Accommodation). 한 체제 규칙에 전면 귀속되는 선택을 하면, 관련 체제 내 보조금 및 규제에 예측 가능한 기회를 얻는다. 단, 다른 체제에서의 시장은 포기해야 한다. 동화 전략은 관세 면제 대신, '침묵 시 동맹국 관세-보복이 동시에 실행된다'는 조건을 품는다. 둘째, 교량(Bridge). 두 체제 사이 완충자로서 역할로 시장의 이중 확보가 가능했으나, 이제 규제·데이터에 이중 부담을 져야만 한다. 테슬라가 상하이와 베를린에서 동시에 배터리를 찍어내지만, 데이터 국적인증서를 매 분기마다 맞춰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이에 속한다. 셋째, 분할(Split). 법인·데이터·회계의 절연으로 정치 리스크를 격리할 수 있으나 이같은 분할의 길은 비용이 눈덩이다. 틱톡은 미국 IPO를 위해 법인도, 코드도, 서버도 절연하려 든다. 그렇게 비용은 상승하고 시너지는 잃지만, 어느 쪽도 쉽게 회사를 '인질'로 삼을 수 없게 된다.
기억해야 하는 건 세 길 중 무엇을 고르든 첫 단추는 반드시 같다는 점이다. 바로 '어디에 설 것인지'에 대한 선언이다. 그렇다고 선언을 미루는 순간 비용은 복리로 붙는다. 버드 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가 협찬 캔 사진을 올린 48 시간 뒤 보수 인플루언서들이 '#BoycottBudLight'를 달았고, 해시태그는 440 만 건으로 순식간에 폭증했다. 하지만 버드 라이트는 이에 대해 첫 72 시간 동안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어 놓지 않았다. 그리고 소매 체인들은 관련 제품의 진열을 줄이기 시작했고, 소비자는 경쟁사 맥주로 갈아탔다. 열흘 만에 나온 사과문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시가총액은 이미 70 억 달러 이상 줄어 있었다. 경고 → 제재 → 철수는 계단이 아니라 제곱 곡선이다. 하루 미뤄지면 손실은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된다. 기다림이 곧 악성 옵션(Negative Optionality)인 이유다.
비정상적 신호가 포착되면 48 시간 안에 세 단계를 돌려야 한다. 12 시간 안에 HS코드와 달러 노출액을 확인하고 역외 결제 테스트를 끝낸다. 24 시간 안에 동화·교량·분할 중 어떤 길을 예고할지 사실상 결정해 내부 문서를 돌려야 한다. 48 시간 안에는 가격·재고·FAQ를 공개해 소비자 불신과 '정체성 프리미엄'의 폭등을 막을 수 있다. 2024년 시카고 부스 스쿨 실험에 따르면, QR 라벨 하나로 원산지와 관세 코드를 보여 주었을 때 보이콧 해시태그 노출이 47 % 줄었다.
이번 PDF는 자유무역 기본값의 사망선고이자, 국가-안보 운영체제의 부팅음이다. 신뢰(정보 공개)·속도(48 시간 선언)·감정(정체성 프리미엄 관리)의 세 모듈을 OS처럼 깔지 못하면, 시장과 규제는 가장 비싼 해석을 자동으로 입력한다. 국경은 자본을 다시 불러 세우고, 관세는 서류가 아니라 국기에 서명하라는 명령이 된다. 선택을 미루는 동안, 가장 비싼 선택지는 이미 결제되고 있을지 모른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