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11·끝〉

5 days ago 5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들썩여 잠을 잘 수가 없네
뿔에 칡꽃이며 참나리 원추리까지 꽂은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자귀나무처럼 이파리 오므리고
호박꽃처럼 문 닫고 잘 수가 없네

아이구 그래도 제집이라고 찾아왔구나
엄마는 부엌에서 나와 소를 어루만지고
아버지는 말없이 싸리비로 소 잔등을 쓰다듬다가
콩깍지며 등겨 듬뿍 넣고 쇠죽을 끓이시지
(중략)
웃말 점보네 집에 판 소가 제집 찾아온 밤엔
죽은 어머니 아버지까지 모시고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호랑나비 가득 얹은 산초나무같이
흔들려서 잘 수가 없네

―송진권(1970∼ )


이 글이 마지막이다. 이 코너를 딱 10년 전 8월에 시작했고 10년 후 7월에 끝내기로 약속했다. 사람 목숨에 끝이 있으니 글의 목숨에도 끝이 있어야 맞다. 차지한 내 자리를 오래 고집하면 다른 이의 문장이 묻힌다.

인생의 마지막 날,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숨을 거두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래서 이 코너의 마지막 날도 가장 아름다운 시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시는 소가 꽃을 달고 돌아온 밤의 이야기다. 그 밤엔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시인의 소는 한때 소였으나 이제는 소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간밤에 서러움이 소처럼 찾아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서러움이 나의 소다. 간밤에는 그리움이 소처럼 찾아와 밤새 수런거렸다. 이 그리움이 나의 소다. 간밤에는 분노가 소처럼 찾아와 밤새 나를 두드렸다. 이 분노가 나의 소다. 그것을 내쫓을까 하였으나 이 시를 보고 반성한다. 나의 서러움은 제집을 찾아온 것이니 쫓아낼 방법이 없다. 소죽을 끓여 대접해야 한다. 10년 전, 나의 첫 칼럼은 김종삼의 소였고, 10년 후 마지막 칼럼은 송진권의 소다. 이렇게 우리의 소는 계속 밤잠 못 이루게 찾아올 참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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