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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유럽에서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자 프랑스가 '핵우산론'을 꺼내 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핵을 기반으로 유럽 자체 핵우산 체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끊는 등 침략국 러시아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자, 유럽에선 안보를 미국에 계속 의지하고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우리 편에 남아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독일의 유력 차기 총리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유럽 자체 핵우산을 언급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유럽의 두 강대국(핵보유국)인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츠 대표의 이 제안에 마크롱 대통령이 적극 화답한 셈이다.
일단은 유럽 대륙의 양대 강국이 자체 핵우산론 확산을 주도하는 양상인데 6일 브뤼셀 EU 특별정상회의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각국이 처한 입장에 따라 '유럽 핵우산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유럽 안보에 미국의 관여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프랑스 국내에서도 극우 국민연합(RN)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외무부 성명을 통해 마크롱의 연설에 '핵 협박' 내용이 담겼으며 프랑스가 유럽의 핵 후원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핵우산은 핵보유국이 동맹국(비핵보유국)을 적대국의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개념이다. 적대국의 핵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핵보유국이 동맹국을 대신해 보복할 것을 약속하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에 의존해 안전보장을 도모하는 걸 비를 피해 우산에 들어가는 것에 빗대어 이 용어가 쓰였다. 나토는 핵 공유 체제에 따라 5개 회원국(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튀르키예)에 미국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두고 있는데 최종 사용 권한은 미국에 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셈이다. 다만 프랑스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영국과는 달리 나토 측에 핵무기 접근권을 허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핵 방위 체계를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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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3일 부산 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해군 제1항모강습단 소속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 갑판에 F/A-18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기와 승조원들이 도열해 있다. 2025.3.3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은 한국에도 북한의 핵 및 재래식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반으로 해 1978년 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공식적으로 명문화됐다. 나토와 달리 한국 땅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고 있지만 한반도 주변에 전략자산을 수시로 전개하는 등 미국의 핵 및 재래식 전력을 확장하여 제공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있다.
확장억제 전략에는 늘 회의론이 따라다닌다. 이 전략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한국이 북한의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곧바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자동적인 핵보복'에 대한 상호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미 본토 도달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본토 피격 가능성을 감수하고 핵 보복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의 행태를 보면 한국에서도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것 같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08일 07시36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