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30대 탈북민 남성 A씨는 지난해 10월 1일 오전 1시께 경기 파주시 문산읍 한 차고지에 차 키가 꽂혀있던 마을버스를 훔쳐 통일대교로 내달렸다. 북쪽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버스는 통일대교 남문 검문소 초병의 제지를 뚫고 군사시설 보호구역까지 진입해 더 달린 후 북문 검문소 앞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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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장에서 체포된 A씨는 국가보안법과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가 됐고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11년 12월 단신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후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으나 2018년 다리를 다친 뒤 건강이 악화했고 경제적으로도 더 어려워졌다. 고시원에 살며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등 계속된 생활고에다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 결국 월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양형 이유가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A씨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북한이탈주민이 처한 현실을 일부 보여주는 것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로 이해된다"고 했다. 이 사건은 한 탈북민의 단순한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탈북민이 겪는 현실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고, 탈북민 지원체계의 한계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A씨가 당국의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남한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는데 그 내용이 안타깝다. 월북 시도 전 거주지 주민센터에 담당 공무원에게 긴급 생계비 지원을 문의하면서 "남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 사는 것이 남한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재판에서는 "북한에서는 하루 이상 굶어 본 적이 없는데, 남한에서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는 제 모습을 보니 돈이 없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 입국한 누적 탈북민은 3만4천314명이고, 올 1분기에도 38명이 입국했다. 코로나 이후 연 100명 이하로 크게 줄었다가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따듯한 배려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들이 많다. 공무원 등 공공 부분에서 일하는 탈북민도 211명(작년말 기준)이나 된다. 하지만 A씨처럼 생활고 등으로 월북을 시도할 정도로 남한 사회에 동화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잖다. 2012년부터 10년간 남한에 정착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민이 31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고통은 가중되기 십상이다. 탈북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 12월 나온 '2024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실업률은 2023년(4.5%)보다 크게 악화한 6.3%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국민 실업률 3.0%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사회 전체가 경제난 등으로 불안과 경쟁이 심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난 4월 경기 안성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는 탈북민을 위해 10억원을 기부한 이산가족 양한종(88)씨에 대한 감사 행사가 열렸다. 양씨는 이 자리에서 "북한과 달리 한국은 여러분이 노력한 만큼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가 새로운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새 인생을 꿈꾸며 사선을 넘었을 그들도 한국 사회가 '노력한 만큼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실감하길 고대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09일 16시0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