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남자가 집안일 덜하면 출산율 낮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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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PG)

가사노동(PG)

[최자윤, 정연주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역할을 연구해온 공로로 2023년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1990년 하버드대 경제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가 됐고, 2013년 전미경제학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노벨상 수상전부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학자다. 특히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집중 조명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골딘 교수가 또한번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연구 사례로 짚은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거시경제와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아기와 거시경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미 워싱턴포스트(WP) 18일자 칼럼이 이 논문을 뒤늦게 소개하면서다. 남성이 가사노동을 덜 하는 나라에서 출산율이 더 낮다는 게 연구 골자인 이 논문에서 한국이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성장을 이룩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진 국가 중에서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에 비해 긴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주장이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골딘 교수는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인 한국의 여성은 남성보다 매일 3시간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부부 평등 측면에서 과거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현대화를 이룩한 한국에서 여성은 사회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 하지만 남성은 여전히 아내가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전통적 생각을 갖고 있고, 이러한 인식의 충돌이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골딘 교수는 남녀 간 가사노동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성은 다른 아빠들도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외국의 저명학자가 한국 저출산 문제를 분석한 것이 어찌 우리 현실과 다 맞을까 싶다. 논문 내용을 전하는 포털 기사 댓글 창에도 '가부장제 시절 한국은 자녀 다섯도 단출했다' 식의 부정적인 글들이 주로 달렸다. 물론 저출산의 원인을 가사노동의 불균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달 초 '사교육비 1% 늘면 출산율이 최대 0.3% 가까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듯이 사교육 문제도 저출산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복잡다기한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출산율이 9년 만에 반등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통계가 최근 속속 나온다고 해서 섣불리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인구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워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한국의 저출산이 외국에서야 칼럼의 소재이겠지만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02/20 15:0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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