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취임과 동시에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에선 우려했던 '정치 보복'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주요 참모였지만 트럼프의 재선 도전 과정에서 반기를 들었던 이들이 주요 타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이 대표적인 인사다. 이들은 2020년 미국이 이란혁명수비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작전을 단행한 후 이란으로부터 보복 우려 때문에 미 정부 차원의 경호를 받아왔는데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이를 철회한 것이다.
미군의 서열 1위였던 밀리 전 합참의장에겐 좀 더 모욕적인 보복 조치가 추가됐다. 4성 장군인 그의 계급을 재평가하는 것이 가능한지 미 국방부가 조사를 시작했고, 이는 그의 계급 강등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고 미 언론이 전했다. 국방부 건물에 걸려 있던 그의 초상화도 트럼프가 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취임 선서를 한 직후 철거됐다. 역대 모든 합참의장의 초상화가 내걸린, 미군의 역사와 유산이 모인 곳에서 그의 흔적만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밀리 전 의장은 2019년 트럼프가 임명했지만 자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원했던 트럼프와는 불편한 관계였다. 특히 트럼프가 연임 도전에 실패했던 2020년 11월 대선을 전후한 시기가 두 사람 간 갈등의 최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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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전 의장은 2020년 11월 대선 직전인 그해 10월 30일과,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한 2021년 1월 6일 직후인 1월 8일 중국군 카운터파트인 리쭤청 연합참모부 참모장에 전화했는데 트럼프 측은 이것을 결정적인 배신행위라고 생각한다. 당시 대선 직전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가 불리한 대선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려고 중국에 군사적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소문은 중국 측에까지 흘러 들어가 두 나라 사이에 예기치 않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이후 밀리 전 의장은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당시 중국군 수뇌부와의 통화는 "두 강대국 간의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고, 위기를 관리하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밀리 전 의장의 이임사는 지금도 군의 정치적 중립을 상기시킬 때마다 회자한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때까지 유임돼 4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2023년 9월 합참의장 이임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미국 군대)가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것은 왕이나 여왕도, 폭군이나 독재자도 아닙니다.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a wannabe dictator)도 아닙니다. 우리가 개인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것은 미국의 헌법이고 미국이라는 가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합니다." 여기서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는 말로 트럼프를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군이 수호해야 할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런 신념이 있었기에 트럼프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3년 검사 시절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 한마디로 국민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군 통수권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2025년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지시를 수행해 12·3 비상계엄에 병력을 동원한 군 장성들도 법의 심판대에 섰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특전사 예하 707특임단의 김현태 단장은 계엄 해제 뒤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의 군인으로서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하고 스스로 죄를 물어 사랑하는 군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군이 진정 수호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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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02/04 16:3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