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실개천이 흐르는 서울 노량진의 어느 주택 앞마당에 ‘일진금속공업사’가 들어섰다. 쇠를 다듬는 직원 둘, 기계 몇 대뿐이던 이 공업사를 허진규 회장은 한국 소재산업의 한 축을 세운 일진그룹으로 키웠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소재 독립의 출발이었다. 국내 전력·전선산업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1970년대 허 회장은 “수입 말고 우리 손으로”를 선언하며 동복강선과 배전금구류 등을 독자 개발했다. 당시 ‘동복강선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에 전깃불이 켜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어촌 근대화에 기여한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허 회장은 인조 다이아몬드, 전해동박 등 고부가가치 정밀 소재 개발로 영역을 확장했다.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산업 구조에서 산학연 협력을 밀어붙여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 그 결과 일진다이아몬드는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회사로 성장했다. ‘기술 자립’을 국내 산업사에 새긴 허 회장은 팔순을 넘겼는데도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한국 제조업사의 굵은 변곡점을 몸소 통과한 창업 원로가 긴 침묵을 깨고 15년 만에 언론 앞에 선 것은 공학 부흥을 위해서다. 허 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기술에서 시작된다”며 “공대를 선택한 청년들이 한국 산업의 다음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공대에 진학한 가족이 또 있나요.
“형들은 모두 법대에 갔어요. 부모님은 제가 의대에 진학하길 원하셨고요. 제 생각에 법대는 평생 죄지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길 같았고, 의대는 매일 아픈 사람을 봐야 하는 직업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공대를 택했죠.”
▷어떤 매력을 느꼈습니까.
“공대를 나오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였죠. 과는 선배 말 한마디에 선택했어요. ‘금속공학과가 유망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막연한 선택이 제 인생을 결정한 셈입니다.”
▷당시에도 공대 인기가 별로였나 보네요.
“저는 전형적인 비주류를 선택한 거죠. 다들 판검사를 목표로 하는 시대였으니까요. 판검사나 의사는 서울에서 일하는데 공대는 먼지 가득한 지방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다만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공대 출신이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어요. 산업이 일어나야 일자리도 생기고 국가도 강해지거든요.”
▷ROTC 1기입니다.
“제 운명을 바꾼 결정이었습니다.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 ROTC(학군사관후보생) 제도가 생겼어요. 별생각 없이 장교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 국산 무기를 개발하자는 취지로 ROTC 중 몇 명을 뽑아 육군본부에 배치했습니다. 원자력공학과 2명, 기계공학과 2명, 금속공학과 1명을 선발했는데 저도 거기에 포함됐어요.”
▷어떤 업무를 담당했습니까.
“육본 조병위원회라는 곳에서 근무했습니다. 쉽게 말해 군 장비와 군수 물자를 어떻게 국산화할지 고민하는 위원회였어요. 전국 방방곡곡 군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돌아다니며 국내 실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차량기계제작소도 이때 알게 된 회사입니다. 나중에 제대하면 꼭 저 회사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괜찮은 회사였죠.”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는 어땠나요.
“한국차량기계제작소는 금속 주물, 기계·시계 부품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였어요. 산업 현장의 경험을 여기서 쌓았습니다. 공대를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죠. 제조업 기반이 워낙 약했거든요. 마땅히 일할 공장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금속공학과는 더 취업이 어려웠어요.”
▷차출된 다른 동기들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국전력에 입사하거나 미국 미시간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등 다들 자리를 잘 잡았어요.”
▷창업은 어떤 계기로 결심하셨나요.
“첫 직장이던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일본인 공장장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회사가 부도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니 ‘문을 닫는 거다’라고 하더군요. 다시 구직할 수도 있었지만 평소 성실함을 눈여겨본 공장장이 창업을 해보라고 조언했죠. 28세 나이로 노량진 자택 마당에 일진금속공업사를 차렸습니다.”
▷동복강선은 어떻게 개발했습니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하는 이동녕 박사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구리의 뛰어난 전기전도도와 철의 강도를 결합한 ‘동복강선’의 개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힘은 철선이 받고 전기는 구리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선입니다. 영국 등 일부 선진국만 가진 기술이었는데 국산화해 보자고 뭉쳤습니다. 회사 전체 자산이나 다름없는 금액을 베팅했죠.”
▷산학연 협력 1호 기업이군요.
“맞아요. 태풍이 한 번 불면 통신선이 모조리 끊어지던 시절이었어요. 태풍 ‘사라’가 왔을 때는 전국 통신망이 마비되기도 했죠. 튼튼한 전선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진처럼 작은 회사는 안 된다, 대한전선이 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전기공학과 출신들이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반대했죠. 저는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밀어붙였어요. 금속공학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했거든요. 이들을 설득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1975년 동복강선이 송전용 전선으로 본격적으로 깔리면서 국내 농업·통신 인프라가 동시에 현대화됐습니다. 전국 구석구석에 전깃불이 들어갔죠. 국내에서만 쓰인 것도 아닙니다. 이란에도 수출을 많이 했어요.”
▷동박도 대표적인 국산화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동박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차세대 통신 등에 쓰이는 전자산업의 핵심 소재입니다. 당시 일본에 전량을 의존하고 있었어요. 동박이 A·B·C급으로 나뉘는데 일본이 자기들은 A급을 쓰고 한국에는 핀홀(구멍)이 많이 뚫린 C급만 보내줬어요. 심지어 그마저 받기 어려울 때가 많았죠. 반드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소재를 장악당하면 산업 전체가 인질이 되니까요. 일진이 동박 국산화를 시작했고, 결국 일본이 만들던 제품을 100% 대체하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공업용 다이아몬드 역시 산학연 협력의 상징 같은 사례인데요.
“공업용 다이아몬드는 거의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사다 썼습니다. 1987년 KIST와 함께 정부 예산 1억원으로 공동 연구를 시작해 개발에 성공했어요.”
▷GE와의 마찰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대목입니다. GE 같은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사실상 쥐고 있었거든요. 일진 말고도 GE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기업이 8곳 정도였어요. 모두 실패했죠.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뛰어들었다가 소송에 휘말렸어요. 4년에 걸친 법적 공방을 견딘 끝에 기술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GE는 당시 지금의 애플보다 더 큰 회사였어요.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긴 거죠.”
▷계속 소재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동복강선, 동박, 인조 다이아몬드 개발은 결국 ‘공대식 사고’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저는 늘 실험하고, 문제를 잘게 쪼개고,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어릴 때부터 TV나 라디오를 열어보고 부품을 꺼내 다시 조립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완성품보다 부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부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품을 만드는 소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중국이 소재산업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어요. 소재는 한 번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공대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부모들이 의대와 법대를 권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안정적이니까요. 아직도 공대는 지방 공장에서 먼지 마시며 일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남아 있죠. 다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공대 출신이 필요해요. 중국 지도부를 보세요. 시진핑이 칭화대 화학공학과, 후진타오가 상하이교통대 전기과 출신입니다. 반면 한국 지도부는 대부분 법대 출신이죠. 한국도 공대 출신이 요직에 갈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창업을 꿈꾸는 공대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제조업은 손해나지 않는 사업입니다. 기술은 제대로 개발해 놓으면 언젠가는 빛을 봅니다. 공학이 쉬운 학문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기술에서 시작됩니다. 공대를 선택한 청년들이 한국 산업의 다음 장을 열 겁니다.”
이영애/은정진 기자
허진규 회장은 …
△1940년 전북 부안 출생 △1959년 전주고 졸업 △1963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1968년 일진전기 창업 △1981년 국무총리 표창 △1990년 서울대에 신소재공동연구소 기증

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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