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개장 이후 처음으로 세계 증시에서 주목받고 있다. 좀처럼 다루지 않던 뉴욕타임스와 가장 보수적인 니혼게이자이신문마저 한국 증시를 특집으로 다룰 정도다.
‘탄력적인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란 전제조건을 달고 있지만 JP모간은 앞으로 2년 안에 코스피지수가 5000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포트폴리오 지위상 한국처럼 신흥국에 속한 국가의 주가는 시장, 정책, 그리고 펀더멘털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통화 가치를 고려한 한국 증시 여건은 저평가와 환차익 마력이 큰 것으로 평가돼 왔다. 지난 4월 중순 이후 달러 캐리, 유로 캐리, 엔 캐리 자금이 순차적으로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캐리 트레이드 여건상 가장 늦게 반응하는 해외에 투자한 국내 자금까지 돌아오는 리플렉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환차익과 저평가 이익을 누릴수록 해외에 나간 국내 투자자는 고평가와 환차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외화 수수료, 주식 양도 차익 과세까지 고려하면 한국 증시의 매력은 더 커진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들어오게 단초를 제공한 것은 정책 요인이다. 가장 주목한 것은 ‘친증시 대책을 어떤 시각에서 추진하느냐’는 점이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여건에서는 증시 대책을 실물에 뒤따라가는 차원에서 추진하면 주가가 살아나도 일회성에 그친다. 하지만 현 정부는 경기대책 차원에서 친증시 정책을 추진해 외국인의 기대를 충족했다.
한국 경제는 해로도-도마의 성장 이론에서 제시한 황금률(golden rule), 즉 실제 성장률과 균형 성장률 그리고 잠재성장률이 동시에 낮아지면서 선진국 함정에 빠질지 모르는 기로에 놓여 있다. 세계은행이 제시한 중진국 함정에 빗댄 이 함정에서 우려되는 것은 정책당국이 경기부양을 모색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이 반응하지 않는 좀비 현상이다.
전통적인 재정과 통화정책 외에 제3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경기대책 차원에서 친증시 정책을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처럼 개인투자자가 1400만 명이 넘는 여건에서 친증시 대책을 추진하면 경제심리 개선에 따른 정책 민감도 제고와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도 한국처럼 이미 개츠비 곡선 함정에 빠진 여건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추진하면 오히려 경기를 침체시키는 재정 침체와 금융 침체를 낳을 확률이 높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더 심화해 각종 사회병리 현상을 위험수위로 치밀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앤드루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제시한 개츠비 곡선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라는 영화에서 착안한 이론이다. 소득 불균형 정도가 위험수위를 넘어 세대 간 이동이 어려울 때는 자녀의 미래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개츠비 곡선 함정에 빠진 여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역구성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경제 이론상 구성의 오류는 미시 정책이 거시 정책을 흐트러뜨리는 경우고, 역구성의 오류는 그 반대다. 이 상황에서는 재정과 통화정책은 특정 매크로 지표에 의존하는 프레임 효과보다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해야 한다.
외국인이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현 정부의 재정정책을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소비 쿠폰 등을 통한 추경 지출이 한계소비성향(MPC)이 높은 중하위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 우려도 피케티 공식에 따라 성장률(g)이 이자율(r)보다 높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7월 금융통화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한 조치가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투기는 전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를 보편적 수단인 금리로 대처하다간 개츠비 곡선 함정에 더 빠질 위험이 높다. 금리 내리기가 여의치 않았다면 중하위층을 지원하는 선별적인 정책을 보완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