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 모두가 분별없이 설쳐대고, 나의 길은 지금 힘들기만 하구나.
아침 지을 불도 못 지핀 데다 우물은 얼었고, 밤엔 변변한 옷이 없어 침상이 싸늘하다.
주머니 비면 남부끄럽고 난처할까 봐, 한 푼 남겨둔 채 그저 바라보기만.
(翠柏苦猶食, 晨霞高可餐. 世人共鹵奔, 吾道屬艱難. 不爨井晨凍, 無衣牀夜寒. 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
―‘빈 주머니(공낭·空囊)’ 두보(杜甫·712∼770)
지독한 가난. 음식이랄 수도 없는 측백나무 열매와 아침노을로 허기를 채운다. 쌀이 없으니 불을 지필 엄두도 못 내고 변변한 옷조차 없어 잠자리가 차디차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남들은 분별없이 되는대로 살아가지만 나는 단연코 그 길을 거부한다. 가난하고 힘든 삶일지언정 나의 철학, 내가 견지하는 도리를 고수한다. 그 와중에도 주머니가 텅 빈다는 게 창피하고 난처하다? 주머니 속에 달랑 ‘한 푼 남겨둔 채 바라보는’ 심사는 어떤 것일까. 장난인 듯 우스개인 듯 내뱉는 시인의 냉소적 자조(自嘲) 한마디로 그 지독한 곤궁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양식조차 없는 가난뱅이 시인이 허기를 달래는 ‘측백나무 열매’와 ‘아침노을’은 기실 상고 시대 신선들이 먹었다는 선식(仙食). 지금은 궁핍한 처지가 적이 한탄스럽지만 그렇다고 부박한 세속의 흐름에 부화뇌동하지는 않으리라는 다짐, 고결한 선비의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처절하다.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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