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헌법 53조'가 사문화하면 생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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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헌법 53조'가 사문화하면 생길 일

더불어민주당이 21대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에 들어갔다. 경선 초반부터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아직 본선까지 47일 남았지만 현재로선 이 전 대표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권한대행은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41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헌법 53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은 사실상 무력해질 것이다. 몽테스키외가 그토록 강조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핵심 원리 역시 작동을 멈춘다.

그런 의미에서 41개 거부 법안은 민주당 정권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다. 이들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김건희 특검법(4회), 채 상병 특검법(3회), 내란죄 특검법(2회), 명태균 특검법 등 10여 개 법안 중 다수가 재발의돼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일이 ‘내란 종식’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방식을 변경하는 방송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각 2회),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민주유공자예우법안 등 사회적 논란이 첨예한 법안 역시 국회 문턱을 넘어 집행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나머지 법안 상당수가 막대한 정부 재정 투입을 요하거나 기업을 옥죄는 반시장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하나에만 13조원의 혈세가 투입된다. ‘농망(農亡) 4법’으로 불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2회) 등이 그대로 통과되면 연간 최소 2조8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고교 무상교육에도 연간 9439억원이 들어간다. 이들 6개 정책을 시행하는 데만 올해 약 17조원, 5년간 40조원가량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이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연간 25조원 규모의 기본소득 예산이나 이번에 새로 나올 현금성 공약은 차치하고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부채가 올해 1270조원(국내총생산·GDP 대비 47.8%)에서 2030년 1623조원(55.3%)으로 5년간 353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출 구조조정 없이 이들 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국가채무는 5년간 400조원 가까이 불어난다. 역대 최대인 문재인 정부 증가폭(310조원)을 크게 웃돈다.

여기에 파업 조장법인 ‘노란봉투법’과 소송 남발법인 상법 개정안까지 통과된다면 기업은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에 빠질 것이다. 불법 파업에조차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받고, 행동주의 펀드의 무분별한 소송에 휘말리면 기업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

물론 거부된 법안이 모두 재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는 거부권을 행사할 걸 뻔히 알고서도 정권 발목잡기용으로 강행했을 수 있다. 현실적인 제약에 정책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후 자신의 평소 신념과 배치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법인세 인하, 이중곡가제 폐지 등을 결정한 사례가 있다.

6월 대선 이후 탄생하는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는 두 번째 정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3일 차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하며 정책 속도전에 돌입했다. 만약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그동안 거부된 법안을 줄줄이 처리해 즉각 시행에 들어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신념을 접은 ‘바보 노무현’ 같은 지도자가 다시 한번 등장하기만 바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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